※ 이 글에는 영화 <프리스트>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형민우 작가의 만화가 원작인 그 <프리스트> 아닙니다 =ㅅ=)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만화 좀 보는 또래 여자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도 '야오이'(요즘에는 주로 BL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 그때는 저렇게 불렀다.)에 재미를 붙이는 중이었다.
당시 야오이물의 '레전드급'이라고 전해지는 것들이 몇가지 있었다. 일본 만화 중에 [브론즈]나 [절애] 같은 것들이 그랬고 (나도 이 두 작품은 못봤다) 한국 만화가 중에서는 이정애가 아주 유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중에서도 몇가지 작품이 꼭 봐야 하는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아이다호>, <거미여인의 키스>, <크라잉 게임>, <M.버터플라이>, <토탈 이클립스> 등등이 그런 작품들이었다. 동네 비디오가게 세 곳을 단골로 다니며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도 당당히 빌려보던 (헉) 여중생 에일레스는 그 영화들을 한두편씩 보기 시작했다.
오늘 말하려고 하는 영화, <프리스트>도 그때 그렇게 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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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그렉 신부가 리버풀의 빈민가 교구로 온다. 그렉 신부는 매튜 신부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매튜 신부는 교단의 권위주의와 형식주의에 맞서며 종교 외에 노동 문제 등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매튜는 가정부와 연인 관계로 지내고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렉은 혼란스러워 하기 시작한다. 믿음에 대한 회의로 답답해진 그렉은 신부복을 벗고 술집에 가고, 거기서 만난 남자 그레이엄과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다음 날, 아이들의 고해성사를 듣던 그렉은 열 네살의 리사에게서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렉은 리사를 도울 방법을 찾아보지만, 고해성사 내용을 누설할 수 없다는 규율 때문에 고뇌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초반부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었다. 동성애 혐오증은 자신의 내면에 억압된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공포를 외부로 투사하여 나타난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동성애자를 학살한 것으로 유명한 아돌프 히틀러는 사실 동성애 기질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설도 있다. <아메리칸 뷰티> 같은 영화에도 그런 설정이 나온다.
그렉의 직업은 '신부'이고, 신부는 '정결의 맹세'를 한 존재다. 영화 초반 원칙적인 내용으로 설교하는 그렉의 모습으로 추정하건대, 그는 스스로를 꽉 옭아맨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면서 말이다.
그렉은 그레이엄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갖는다. 그레이엄은 그렉에게 있어서 '신부로서 가지면 안되는' 타락의 상징이며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렉은 성당 밖에서만 그레이엄과 자유롭게 만나고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렉이 철저히 신부로서 존재해야 하는 성당으로 찾아온 그레이엄을 보았을 때, 자신의 앞에 서서 성체를 받으려 입을 벌리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느꼈을 공포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레이엄과 관련한 '인간적'인 부분에서 괴로워하는 동시에 그렉은 '신부'로서 또다른 고통에 직면한다. 리사가 아버지로부터 당하는 성폭행을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리사의 엄마는 리사가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렉은 리사에게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 라고 전하게 하지만, 리사의 아버지는 오히려 그렉을 찾아와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협박한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리사는 교실에서 발작을 일으켜 쓰러지기까지 하고, 그렉은 리사의 아버지를 찾아가 거의 애원하다시피 그만둬달라고 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파국은 한꺼번에 찾아온다. 리사의 엄마는 자신의 남편이 딸을 성폭행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렉을 찾아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괴로워하던 그렉은 그레이엄을 만나고,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누다 경찰에게 적발된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게이 신부'에 대한 기사가 실리고, 그렉은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그렉 신부는 외진 곳에서 근신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매튜 신부가 찾아온다. 매튜 신부는 그렉에게 그의 사랑은 죄가 아니며 자신과 함께 미사에 서자고 설득한다. 마음을 다잡은 그렉은 다시 성당에 돌아가 교인들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신도들은 자신의 믿음을 우스개로 만들었다며 분노하면서 성당을 나가버린다. 남은 사람들하고만 미사가 진행된다. 그리고 성체 의식 차례가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두 신부가 나란히 서지만, 신도들은 모두 매튜 신부 앞에만 줄을 선다.
카메라가 아직 앉아있는 리사의 얼굴을 비춘다.
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서 앞으로 걸어온다.
리사는 그렉이 보낸 괴로움의 시간들을 알고, 이해한다. 그래서 오직 리사만이, 그렉 신부의 앞에 선다.
그렉은 떨리는 손으로 성체를 내민다.
그리고 오열하며 그녀에게 기댄다.
리사 역시 그를 감싸안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렉이 구원하고자 했던, 그러나 결국 하지 못했던 리사는, 오히려 그렉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한다. 그렉이 끝내 종교로서 얻지 못한 용서를 준 것은 바로 사람, 그것도 가장 추악한 일을 당했던 어린 소녀였던 것이다.
'터부'라는 주제를 듣고 떠올린 이 영화는, 그야말로 사회적인 금기의 복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주인공은 동성애자이며, 근친상간- 정확히는 성폭행이 등장하고, 고해성사 때 들은 내용을 밝히면 안된다는 규칙까지 나온다.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드라큐라>에서는 드라큐라 백작의 부인이 남편의 전사 소식이 잘못 전해져 자살하고, 자살한 영혼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교회의 계율 때문에 드라큐라 백작이 비뚤어(?)지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결국 인간에게서 위안을 찾는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선을 행하는 마음과 죄를 저지르는 심보도, 저주를 퍼붓는 것과 용서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모두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그것이 인간다운 것이며, 인간이 모든 것의 열쇠라는, 그런 이야기다.
제대로 이해하기엔 어렸던 여중생 시절에도, 세상에 찌들어 인간을 믿지 못하는 지금의 나에게도, 참 좋게 기억되는 영화였고, 기억될- 영화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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