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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10 / 첫사랑]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by 란테곰

사랑해선 안 될 것이 너무 많고, 그래서 더욱 슬퍼진다 하지 않았던가. 그 중에서 가장 슬픈 건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라고도 했다. 경중輕重이 다르고 천심淺深이 다를 뿐이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이 슬픈 사랑은, 애석하게도 일단 진행이 되면 약도 없고 답도 없다. 해결책은 오로지 하나. 애정이든 애증이든 관심이든 집착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대상에게 매달리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뿐. 다행히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지쳐서, 혹은 나와 마주볼 수 있는 대상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잊게 되지만 아직 너무나도 매력적인 사랑 또는 슬픔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 대한 동경 반 그리움 반인 마음을 담아, 떠올리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나는 '첫사랑'의 기억을 적어보기로 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시작한 펜팔은 중학교 때 이른 바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고, 또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지 지금도 궁금한 또래 소녀와의 펜팔은 내겐 '즐거운 기다림' 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각자의 고민과 걱정, 기쁨을 함께 나누며 나름 '깊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 흔히들 자주 하는 표현으로 '새끼를 쳐 달라'는 친구들의 요구를 들어줄 정도로 분위기가 유지되어 급기야 한 반에 다섯명이 같은 학교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펜팔을 하게 되었더랬다. 희한하게도 그 중 내가 제일 글씨를 잘 썼기에; 친구들 편지를 대필해주다 딱 걸려서 혼난 적도 있던, 정말 풋내 가득하고 얼굴 벌개지는 아련한 기억이지만 그래도 저 때가 내 펜팔 역사에 있어 가장 큰 부흥기였음은 분명하다. 왜냐면, 두어 달 동안을 열렬히 부탁한 덕에 겨우겨우 받은 사진들을 한 자리에 모아모아 확인하니 내 상대가 두 번째로 예뻤기 때문이었다. *-_-*


그네들은 양평, 우린 용인. 지금도 차 없이 가려면 가깝다고 보기 힘든 동네이니 그 나이땐 오죽했을까. 어린 치기로 한 번은 찾아갔음직도 하건만, 그 때의 우린 오락실에서 쓸 돈을 마련하는 것도 애로사항을 느끼던 아이들이었으니 더더욱.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친구가 펜팔의 생일을 맞아 이리저리 돈을 모으고 굴려서 - 오락실까지 끊을 적엔 우리 모두 박수를 쳐주었다 - 겨우겨우 생일 선물로 보낼 곰인형을 사 시내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서 소포로 보낼렸더니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 결국 함께 갔던 친구들의 주머니까지 털었던 일화는 우리들 사이에선 매우 깊은 교훈과 감명을 주었고, 그 후 우린 펜팔이 생일을 맞이하면 귀걸이를 사 편지 안에 넣어 보내는 것이 관습화 되었다. 다행히 그네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한 친구는 착용 인증샷까지 받아볼 수 있었어서 더더욱  기뻤는데, 주위의 펜팔러(?)들까지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네들 중 제일 예쁜 아해가 인증샷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_-*




그렇게 그렇게 반 년. 편지를 보내는 것이 조금씩 뜸해지다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도 생길 무렵, 그네들이 우리 학교의 소풍 날짜와 같은 날에 에버랜드로 소풍을 온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우리들은 '신의 도움을 받았네' '역시 거기 계셨군요' 등등의 호들갑을 떨기 바빴고,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도 스윽 다시 편지를 보내는 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더랬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중학교가 새로 생겨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들 250명이 그대로 한 중학교로 올라온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학교 친구들에게 가슴 떨릴 일이 없던 우리였으므로 더더욱 그랬으리라. 어차피 교복을 입고 가야하지만 우린 집이 가까웁고, 또 다들 연간회원권이 있었기에 얼른 단체사진만 찍고 - 그 당시 에버랜드에서 제일 가까웠던 - 우리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울 정도로 들떠있었으니 더 할 말이 없겠다. 


소풍 당일 집 제공은 물론이요 소풍 전날 각자 미리 코디해 둔 옷을 한아름씩 싸들고 온 것들을 집까지 들고가야 한다는 점을 미처 생각지 못한 채 찬성표를 날린 난 곧 후회했지만 친구들은 신이 났던 소풍 전날, 그 짧은 머리를 어찌 만져야 조금이라도 더 있어보일까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치다 겨우겨우 잠들고 일어나 - 오락실을 끊진 않았지만 - 나름 모아두었던 꼬깃꼬깃 쌈짓돈을 꺼내 챙기었다. 아버님은 소풍이니 잘 놀고 오라며 무려 이만원을 쾌척해주셨고, 난 잔뜩 빵빵한 주머니가 가져다주는 안정감에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에버랜드를 향해 걸어갔다. 20분 지나 도착한 에버랜드엔 이미 다양한 교복을 입은 수많은 아해들이 난립해있었지만 난 내 친구들을 바로 찾을 수 있었는데,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얼굴은 잔뜩 긴장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열 시 반 즈음 사진을 찍고, 선생님들은 '너희들이 더 잘 아니 알아서 놀고, 일 저지르지 마라' 는 간단한 당부의 말씀만 남기신 채 삼삼오오 무리지어 사라지고, 다른 무리들도 나름 짝을 지어 각자의 길을 걸어갈 무렵 이미 우리 학년의 절반 즈음은 '우리에게 있어 굉장히 번화한 곳' 인 수원을 향해 혹은 각자의 집을 향해 가는 노선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우리 무리는 당연히 우리집으로. 부랴부랴 옷 갈아입고 각자 준비한 젤이네 스프레이네를 동원해 나름대로의 치장을 마치고선 다시 에버랜드로 향한 우리들은 이미 몸도 마음도 흥분 그 자체였다. 141 - 아직도 건재한 kt 음성사서함 - 에 만들어놓은 내 사서함에 당일 어디에서 몇 시쯤 만날 수 있는지 미리 녹음해두고 번호를 알려 주었으니, 우린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분위기를 살펴보자는 생각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목적지로 향했다. 마침 생일을 맞이한 펜팔을 위해 거금 만 이천원을 주고 백호 인형을 산, 제일 예쁘던 아해와 펜팔인 친구는 목적지에 가까워올수록 얼굴이 퍼래져갔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사진으로 보았을 적에 제일 예뻤던 아해가 약속 장소에서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는 것이 저 멀리에서 보였다. 이렇게 우리의 - 단체 - 첫사랑이 시작되려나 싶었다.




뒷 얘기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사진으로 보았을 적에 제일 예쁘던 아해는 역시 제일 예뻤다. 내 짝은 사진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 역시 사진과는 달랐으니 서로 쌤쌤으로 치자며 쿨하게 웃어 넘기려 애썼음에도, 그 친구나 나나 속았다는 기분에 휘둘려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밥 한 끼 함께 먹고 헤어진 다음 얘길 들어보니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단, 제일 예쁜 아해와 펜팔이었던 친구는 그가 준비했던 거금 만 이천원짜리 백호 인형 선물이 제대로 먹혔는지 나중에 따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따로 만날 적에 친구 한 명과 함께 갈테니 예전 그 친구들 아닌 다른 친구를 데려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