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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012 / 연극] 더이상 그대의 연극은 싫지만 by 빛바랜편지

어장관리 한 번 당해보지 않은 자가 있을까. 모태솔로라 할 지라도 (단 모태솔로라면 자신이 어장관리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공산이 크지만) 어장관리 한 번 쯤은 당해보았을 것이다. 어장관리는 ‘자기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싫다’거나 ‘그저 친구. 외로울 때 데이트 할 수 있는 가벼운 상대’ 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섹스파트너’ 등을 위시한 탐욕의 결정체다.

수능 시험을 치루고 나서 너무 따분한 일상에 사람냄새를 맡고싶어 찾은 곳이 바로 마성의 ‘스카이러브’였다. 지금은 버디버디와 더불어 문란함의 온상이 되었지만 당시엔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음악 등 관심사가 비슷한 한 누나와 친해지게 되었고, 대학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서울생활을 이끌어줄 만한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 누나는 남자 ‘친구’가 많았다. 데이트 하고 싶을 때 누구든 불러내서 데이트를 할 수 있지만 그 중에 누구도 ‘남자친구’는 없었다. 자신에게 그들은 그저 친구들일 뿐이며 그들과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나와 나의 관계도 그런 관계라 생각했고 다른 여자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대해도 되는 것으로 알게됐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지 않았다. 신입생 시절 친해진 많은 여자동기들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지만 난 그저 친구와의 관계로 생각했을 뿐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는지 친해진 여학우들 대부분과는 상당히 어색한 관계가 되었다. 이후에도 여자직원이 많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들과 자연스레 친해진 나는 집이 가깝거나 학교가 가까운 애들과 개별적으로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좋은 카페에 데려가거나 밥을 먹거나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는 나를 보는 여인네들의 눈빛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고, 원인은 내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나에게 이성’친구’의 개념을 설파해 준 누나와도 어색해졌다. 둘이서만 만나기로 한 자리에 타인을 한 명 데려간다고 하니 그 누나 쪽에서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나는 친한 누나동생 사이라면 그렇게 분노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한 번 크게 싸운 우리의 사이는 그렇게 서먹해졌다. 남녀사이 친구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내가 어장관리를 당한 적도 있었다. 예전 글 (http://eseses.tistory.com/38) 에서 언급했던 여성들이다. 연극이 끝난 뒤 코의 이물질로 인해 파경을 맞은 친구는 수많은 남성들을 취급하는 킬러였음이 드러났고, 4살 연상의 누나도 후에 남자친구가 된 남성과 나를 견주고 있었다.

 역시 내가 행동을 잘못하는 것 보다 직접 당해보니 생각이 확실해지더라. 아,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의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든거구나. 특히 자주 보고 데이트하면서 친구라고 지내기는 정말 힘들겠구나.

여자’친구’와의 개인적인 만남이라는 행위를 혐오하기 시작하자, 친한 여자’친구’와 개인적으로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행동 자체가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여성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행동 모두가 호감을 숨긴 거짓연극 같아서 무척 자신이 역겨워지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우지며 뻣뻣해졌다. 그럴 땐 정말 친구나 애인을 막론하고 여자사람과의 인간관계가 거의 단절되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 여자 등을 막론하고 친한 척을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마치 너와 내가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양 행동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정도로 생각할 만큼의 정성과 열정과 친근함을 보여주지만 그들이 가장 친한 친구는 따로 있다는 것에 약간의 질투심, 실망감, 부러움 등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의 평도 좋고 인간관계도 상당히 원만했다. 저렇게 해야 사람을 많이 얻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 중에 더 좋은 친구를 만날 가능성도 더 높아지겠구나. 그게 사람과 함게 살고 사람을 다루는 법 같았다. 좀 싫어도 친하지 않은 듯 해도 약간의 연극을 해야 되는구나. 이성관계에서도 친구와 애인을 막론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통념 상 (그게 무척 어렵지만) 오해의 소지만 주지 않는다면 친구든 애인이든 좋은 사람을 얻을 수 있겠구나 싶더라.

처음부터 친한 사람도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서 저절로 친해지는 경우도 드물다.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얻을 수 있는 사람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인복을 누리며 살고 싶다면 페르소나를 쓴 연극을 충실히 해내어야 하는 세상이다.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극은 진실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진실해지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나만의 그대'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대만의 나'로 돌려주기만 하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일오비_친구와 연인


넌 언제나 내게 잃어버리긴 싫다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유혹하듯 얘기 하면서도
이리저리 재는건지 자존심인지 힘들때 생각나는 친구 이상은 아니라하네 
예쁘장한 얼굴 귀엽게 웃는 그 모습에 널 떠나지 못할거라 생각하는 그대 안스러워
가끔씩은 다그치고 가끔은 달래보아도 이제는 내가 지쳐 그댈 떠날수밖에 없어요

더 이상 그대의 인형은 싫어
그대만의 내가 안된다면 나만의 그대도 될수없어

더 이상 그대의 연극은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