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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10 / 선물] new world awaits by 란테곰.



이 글을 쓰기 전에 여기저기 물어봤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간다고 느끼냐고. 하루는 생각보다 참 길다고 느끼면서 일주일은 의외로 짧다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한 달은 진짜 긴 시간이지만 일 년은 생각보다 엄청 빨리 지나간다고들 했다. 근데 십 년 단위를 물어봤을 때는 조금 얘기가 달랐다. 스물과 서른, 서른과 마흔, 마흔과 쉰은 다르다 했다. 십 년 동안 열 번을 겪는 똑같은 일 년인데도, 앞자리가 바뀌기 전의 일 년은 유독 생각이 많아지고 스스로를 되짚어 보게 된다고들 했다. 누군가는 그 십 년 중 한 번을 '*번째로 찾아 온 end of an era' 라고 말했다. 


돌이켜보건대 난 지난 3년의 시간을 헛으로 보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렇기에 쪼들리게 살면서 하루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보냈다. 온종일 집에만 있고 온종일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시간을 탕진했다. 그 당시의 난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이 나를 바라보며 힐난한다고 여겼을 때였다. 그래서 낯선 이들과의 소통은 물론 친한 이들과의 연락마저도 꼭 필요한 것만을 유지한 채 나머지를 모두 끊어버리고, 의욕도 의지도 없이 그저 내가 숨어지낼 동굴을 파기에 바빴다. 왜냐면 그 동굴 안에서는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을 주었다가 상처를 입을 일도 없고, 누군가의 험담에 신경 쓰지 않는 척 하면서도 내심 귀 기울여 그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염탐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부담 혹은 압박을 느꼈던 것은 내 성격이나 성향과도 맞지 않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어버리니 마땅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 숨어 지냈다' 고 해도 무방하겠다. 대부분의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의 삶에 매진할 3년을 난 그렇게 흘려버렸다.


그 와중에도 만났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나 때문에) 간간이 연이 끊겼었지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수년을 만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은 그저 오래 만난 사람들일 뿐 그 사람들 사이에 인연은 전혀 없었지만, 그들은 똑같이 나를 응원해주고 나를 격려해주고 나를 다시 한 번 일으켜주려 애썼다. 안쓰러워하며 보듬어주고, 힘을 내라며 다독여주고, 그럴 수 있다, 네가 그른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꾸준히 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다시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과 얘기할 용기가 생겼고, 예전 사람들과도 다시금 연락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들은 내게 있어 정말 고마운 사람들인데, 부끄럽고 쑥쓰럽고 해서 '고맙다' 는 얘기를 차마 못 전한 사람들이 많다. 그저 기회가 된다면, 혹시나 내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일부분을 짊어질 수 있게 된다면. 그럼 기꺼이 '내게 기대라'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뇌벌레처럼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잊지 말아야 할 일들. 그것들을 계속 기억하기 위해, 나는 온전한 1인분의 역할을 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었다. 그들이 내게 준 것은 그만큼 어마어마하다.


두 달 뒤 새로운 'end of an era' 가 찾아올 사람이 이제 와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시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일 년을 보낼 수 있게끔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그저 감사하고 또 고마울 뿐이다. 비록 남들에 비해 엄청 늦더라도 상관 없다. 혹여 그들에게 어려운 사정이 생겨 여기저기 물어보다 나까지 찾아오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내가 받은 것을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겐 평생 숙원 사업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근데 난 이 평생 숙원 사업마저도 그들을 통해 얻었다. 그들이 내게 이런 큰 선물을 준 것을 늘 잊지 않고 또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