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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01 / 쇼핑] 이것은 사랑이야기다 by 에일레스

 

나는 대학 시절 백화점에서 꽤 오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방학 때 교복 판매 알바로 시작해서, 학교 다니면서 주말 알바를 계속 하다가, 휴학하고서 거의 직원과 마찬가지로 쭉 일했었다.

 

백화점이란 곳은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한 곳이다. '가격비교' 라는 것이 발달하면서 인터넷을 뒤지면 똑같은 물건을 최저가로 구입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같은 물건이라도 더 비싼 것을 알면서 기꺼이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가니 말이다.

그것은 백화점이라는 곳이 다른 쇼핑 장소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서비스'에 있을 것이다. 백화점에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훨씬 정중하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즐기는' 일부 사람들 중에 갑질하는 사람도 나오는 거고.. 그런거겠지.

 

백화점 얘기를 왜 꺼냈냐면,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영화의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난 곳이 백화점이기 때문이다.

(와, 핑계도 좋다..)

 

 

 

 

캐롤 (Carol, 2015)

관람객 8.67(1,681)
기자·평론가 8.96(13) 평점주기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2016.02.04.118분영국 외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토드 헤인즈
내용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 줄거리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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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테레즈(루니 마라)는 뉴욕의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딸의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들른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아래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음)

 

 

첫 만남에서부터 묘하게 끌렸던 둘은 캐롤이 두고 간 장갑을 테레즈가 집으로 보내주면서 연락을 하게 된다.

 

둘의 관계에는 은근히 계급적인 차이에 의한 역할이 숨어있다. 애초에 점원과 손님이라는 관계로 만나기도 했지만, 캐롤이 사는 저택과 테레즈의 작은 아파트는 한눈에 봐도 그들의 빈부격차를 보여준다. 캐롤이 장갑을 돌려준 보답으로 식사를 대접하러 만난 자리에서, 능숙하게 메뉴를 주문하는 캐롤과는 달리 그런 레스토랑을 별로 겪어보지 못한 테레즈는 메뉴판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그냥 캐롤과 같은 것을 달라고 주문한다. 나이도, 경험도 더 많은 캐롤이 대체로 어떤 제안을 하는 식으로 관계를 리드해가고, 테레즈는 그에 따르는 식으로 응답한다.

 

두 사람은 성격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테레즈는 조금 소극적인 성격으로 묘사되고, 캐롤은 주도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소극적인 테레즈가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캐롤과의 관계 뿐이다. 테레즈는 캐롤의 여행 제의에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갈 정도로 캐롤에게 몰두한다. 그러나 캐롤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쉽게 놓지 못한다. 딸의 양육권 때문에 남편과 소송중이던 캐롤은 테레즈와의 관계가 남편에게 들통나서 양육권을 잃을 처지에 놓이자 테레즈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한밤중에 걸려온 테레즈의 전화마저도 끊어버린다. 남편 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심리치료사도 만나고, 고분고분 살아가지만-

영화는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캐롤은 마침내 자기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테레즈에게 연락을 한다.

이때 다시 만난 테레즈는 그전과는 조금 달라져있다. 마치 캐롤이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처음 캐롤이 테레즈와 식사하게 된 자리에서 담배를 권했을 때 테레즈는 잠자코 담배를 받았었지만, 이번 만남에서는 테레즈가 담배를 거절하는 것부터가 변화를 암시한다. 곧이어 캐롤은 따로 아파트를 얻어 살게 되었음을 알리며 테레즈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하지만, 테레즈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거절한다.

이제 관계의 주도권은 테레즈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테레즈는 그 관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결정을 내린다.

 

 

 

 

 

1950년대에 출간된 자전적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동성간의 사랑을 그냥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그린 것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동성애라 하면 뭔가 구구절절하고 남다르고 파격적일 것 같다는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평범한 사랑 이야기로 만들어놨다. 물론 배우들의 외모가 평범하지 않고 (개인적으론 루니 마라가 살풋 웃을 때마다 진짜 귀여웠다..) 50년대의 뉴욕 풍경을 그린 화면이 전혀 평범하지 않았으나 스토리 면에서는 아주 무난한 영화였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떤가.

원래 사랑이라는게 평범한 듯, 누구나에게 다 그렇듯,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서만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런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것은 그냥 사랑이야기-라고 할만하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한, 사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