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멋대로 희망에 차 있었고, 그것은 고집으로 변하여 부담스러움이 한껏 담긴 언어로 나타나게 되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더이상은 장애물이 없을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마주 앉았으면서도 내 눈을 보지 않는다. 가시방석에 앉은 마냥 뒤척이며 자리를 불편해한다. 내 뒤의 풍경만 바라볼 뿐이다. 이미 내 말은 힘을 잃었고, 이미 다 알고있다는 표정이다. 결국 난 등을 떠밀리다시피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게 된다. 아, 터미널에선 두세시간 걸리는 버스를 또 타야한다. 이 광경, 누군들 아니겠냐마는, 글쓰기의 주제만 아니라면 결코 회상하기 싫은 기억이다.
난 군복무 중인 학생이었고, 그녀는 며느릿감으로 최고로 꼽히는 정규직 교사였다. 우린 지인의 소개로 연락을 시작하고서는, 상근예비역으로 군복무중이었던 나로 인해 온라인과 전화만으로 연락했었고, 그 사이 서로에게 반해 암묵적으로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휴가를 내어 직접 얼굴을 본 첫날, 우린 이미 연인이었다. 만남과 헤어짐 사이, 우리가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만난 날은 겨우 일주일 남짓이었다. 휴가 전부터 수많은 계획을 세워 여행과 공연관람 등으로 알찬 시간을 보냈다. 정말, 천국같은 시간이었다. 짧은 기간동안 내내 함께 했으므로, 서로 나누었던 말과 행동, 표정, 날씨까지 모두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그 시간을 통해 더욱 깊어진 우린 각자의 나이와 처지가 달랐고, 그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으므로 우리는 함께 나름의 계획과 꿈을 꾸었다. 해외에서 살고싶어하는 그녀는 자신이 저축을 한 다음, 내가 졸업하는대로 해외로 함께 나가자는 계획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 곳에서 더 공부를 하도록 하고, 그녀는 이민지원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가져 나를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아, 이 얼마나 순진하기 그지없는 계획인가. 더 순진해빠진 난 그 계획을 굳게 믿었다.
많은 것을 갖춘 그녀가 아무 것도 없는 나를 조건없이 좋아해준다고? 난 그 때문인지 더욱 굳게 믿게 되었다. 일반 여교사에 대한 인식이 싫다는 그녀, 빨간색 쿠페를 몰고다니던 그녀의 생각이 좋았다. 그녀는 남자의 기분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말 하나하나에 크게 반응하고,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음으로 자존심을 세워줄 줄 알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그녀가 나에게 완전히 빠졌다는 생각에 자만하게 된다. 그만큼 믿는 구석이 생겼다는 착각에다 나에게 더없이 완벽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더해지자, 타고난 나의 집착기질이 제대로 발동하기 시작하더라. 교사에게 제일 힘든 3월에, 난 연락이 드물어짐을 집요하게 캐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마음은 그렇게 떠나가더라.
만난 기간이라 해도 기껏 한달 반에서 두달 정도. 게다가 얼굴 맞대고 만난건 일주일 남짓이 전부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의 행복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리고 나누었던 꿈의 달콤함이 끝없었기에 나에게 이별의 무게는 너무 컸다. 나보다 훨씬 성숙했던 그녀는, 모든게 자기 잘못이다, 미안하다 라고 말하며 정중히 이별을 통보했다. 가까이서 얼굴을 맞대며 지친 일상을 위로받는게 그녀가 생각하는 연애이며 결혼도 원한단다. 내 상황으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내 상황을 고려하며 함께 꾸었던 꿈이 왜 실현될 수 없는지, 그녀가 꿈꾸는 꿈의 주인공이 왜 내가 될 수 없는지, 납득하기 힘들 뿐이었다. 난, 노래의 가사처럼 그녀의 결정을 선뜻 따르지 못하고 꽤나 구질한 모습을 보이며 여러차례, 짧지 않은 기간동안 설득을 시도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단호했던 그녀는 내 눈을 보지 않았다.
작년 가을, 그녀의 결혼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원하는 꿈을 이루어줄 만한, 훌륭한 사람을 만난 듯 하다. 이젠 안부랍시고 연락할 수도 없는, 법에 의해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세워졌다. 그저 가끔, 그 때의 시간과 공간과 미소, 그리고 햇살을 떠올리곤 한다.
믿을 수가 없어 우린 끝난 거니?
널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넌 낯선 눈빛과 몸짓들 첨 내게 보이네
한다고 했는데 많이 부족했나봐
하긴 그랬겠지 불확실한 내 미래는 내겐 벅찬 일이겠지
바보같은 꿈을 꿨어 우리만의 집을 짓는 꿈을
너의 미소 널 기다리며 서성대던 공간과
그 때 네 머리위에 쏟아지던 햇살
그 하나까지도 나 잊지 않을께 영원히... 기억해....
무슨 말을 할까? 널 보내는 지금 애써 난 웃지만
사실 난 겁내고 있어 다신 널 볼 수 없기에
바보같은 꿈을 꿨어 우리만의 집을 짓는 꿈을
너의 미소 널 기다리며 서성대던 공간과
그때 네 머리위에 쏟아지던 햇살 그 하나까지도 잊지 않을께 영원히..
부끄러운 눈물 흘러 어서 빨리 떠나가
초라한 날 보기전에 냉정한 척 해 준 니 고마운 마음 나 충분히 알아
어서 가..
마지막 돌아서는 떨리는 너의 어깨 안쓰러워 볼 수 없어
많이 힘들었겠지 니 어른스러운 결정 말없이 따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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