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년

[201005 / 비] 비 내리는 가운데 비를 생각하다. by 김교주

제발 부탁인데, 니들 생각만 하고 주제 던지지 마. 내 생각도 좀 해줘, 라고, 마감이 코앞에 놓이자 외치고 싶어졌다. 정작 힐난을 들어야 할 사람은 나다. 이 한달은 다른 때보다 바쁠 것도 없었건만 끝끝내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이런다고 해서 더 나은 글을 쓰게 되는 것도 아니건만.

황순원의 소나기와 김유정의 소나기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윤흥길의 장마를 떠올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마음에 와서 꼭 들어주질 않았다. 제대로 된 글 하나 써내놓지 못하는 주제에 가리는 것은 왜 이리 많고 불평은 또 왜 이리 한 삼태기인가. 내 자신을 향해 조소 한 번 날려주고, 결국에는 오늘까지 차일피일, 포스팅을 미루기만 했던게다. 

비. 비. 비. 
며칠째 지겹게 비가 내리고 있고 결국 내 마음은 황순원도, 김유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윤흥길도 아닌 알퐁스 도데에 가서 닿았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알퐁스 도데 (꿈꾸는아이들, 2005년)
상세보기
비라는 매개가 사람의 인생을, 혹은 작품 전체를 꿰뚫는 흐름을 바꿔 놓는 사례는 많다. 내가 이번 포스팅을 위해 떠올린 작품들에서만 해도 이미 충분히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비는 결코 없어서는 안될 매개체다.

도데의 별과 황순원의 소나기에서의 비는 분명 같은 의미다. 그럼에도 굳이 황순원이 아니라 도데를 택한 것은 도데 쪽의 목동이 황순원 쪽 소년보다 훨씬 더 순진하며, 별의 '아가씨'가 소나기의 '소녀'보다 순수해서다. 목동은 아가씨에게 등을 내밀어 불어난 시내를 건네줄만한 주변머리도 없고 아가씨 또한 죽을 때 그때 그 드레스 입혀달라고 할만한 잔망스러움 따위 못 가졌다. 이들은 거의 백치에 가깝게 무심하고 무던하며 심지어 어리석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이 어리석음이 좋다. 덜 이악스럽고 덜 때묻은 짜증스러울 정도의 순수.

사무실에서의 포스팅은 늘 이렇게 두서 없이 난잡해진다. 다음 달에는, 꼭 제대로 된 글을 써보겠노라고 애써 자위해본다. 동지들, 미안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