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부탁인데, 니들 생각만 하고 주제 던지지 마. 내 생각도 좀 해줘, 라고, 마감이 코앞에 놓이자 외치고 싶어졌다. 정작 힐난을 들어야 할 사람은 나다. 이 한달은 다른 때보다 바쁠 것도 없었건만 끝끝내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이런다고 해서 더 나은 글을 쓰게 되는 것도 아니건만.
비라는 매개가 사람의 인생을, 혹은 작품 전체를 꿰뚫는 흐름을 바꿔 놓는 사례는 많다. 내가 이번 포스팅을 위해 떠올린 작품들에서만 해도 이미 충분히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비는 결코 없어서는 안될 매개체다.
황순원의 소나기와 김유정의 소나기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윤흥길의 장마를 떠올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마음에 와서 꼭 들어주질 않았다. 제대로 된 글 하나 써내놓지 못하는 주제에 가리는 것은 왜 이리 많고 불평은 또 왜 이리 한 삼태기인가. 내 자신을 향해 조소 한 번 날려주고, 결국에는 오늘까지 차일피일, 포스팅을 미루기만 했던게다.
비. 비. 비.
며칠째 지겹게 비가 내리고 있고 결국 내 마음은 황순원도, 김유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윤흥길도 아닌 알퐁스 도데에 가서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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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데의 별과 황순원의 소나기에서의 비는 분명 같은 의미다. 그럼에도 굳이 황순원이 아니라 도데를 택한 것은 도데 쪽의 목동이 황순원 쪽 소년보다 훨씬 더 순진하며, 별의 '아가씨'가 소나기의 '소녀'보다 순수해서다. 목동은 아가씨에게 등을 내밀어 불어난 시내를 건네줄만한 주변머리도 없고 아가씨 또한 죽을 때 그때 그 드레스 입혀달라고 할만한 잔망스러움 따위 못 가졌다. 이들은 거의 백치에 가깝게 무심하고 무던하며 심지어 어리석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이 어리석음이 좋다. 덜 이악스럽고 덜 때묻은 짜증스러울 정도의 순수.
사무실에서의 포스팅은 늘 이렇게 두서 없이 난잡해진다. 다음 달에는, 꼭 제대로 된 글을 써보겠노라고 애써 자위해본다. 동지들, 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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