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해에도 책 없이 1월을 보낸 적은 없다. 책은 나한테 습관 같은 거였다. 바쁘건 힘들건 슬프건 간에 상관 없이 한달에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건 내게 불가능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생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지. 2016년의 1월에.
악몽에 관한 책이라. 새로 읽을 시간이 없다면 이미 읽은 책에서라도 골라야 했다. 고전 중에 꿈을 다룬 책이 없을리 없다. 그러나 동양고전은 좀처럼 악몽을 다루고 있지를 않았다. 서양 고전은 악몽보다 더한 현실을 취급한다. 환상 소설 속의 꿈은 꿈이라기보다 말 그래도 팬터지에 가까웠다.
북유럽 소설 <최면전문의>를 골라 꼼수를 부리려고 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일가족 살인사건, 뜻밖의 범인, 최면, 이런 단편적인 것들은 기억나는데 글을 엮어낼 만한 중요한 정보들은 이미 휘발되고 없어져버린 후였다. 채비 스티븐슨의 <스틸 미싱>을 골랐다면, 그럭저럭 글 같은 글을 뽑아낼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에 대한 책이다.
할아버지의 제사 준비를 하면서 계속 넋을 놓고 있었고, 나는 초조해졌다. 악몽 같은, 게 아니라 악몽을 다룬 책. 그런게 대체 뭐가 있을까. 그리고 기억해 냈다. 이 이야기를.
잃을 게 있다면 돈 뿐인 남자. 일생을 두고 바로 그 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남자.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이 하나뿐인 혈육인 조카마저 냉대하는 그의 꿈 속에 친구가 찾아온다. 붕대를 감고 쇠사슬을 철컥거리면서. 남자처럼, 자기 평생을 돈에 사로잡혀 살았던 친구는 남자가 자기 같은 꼴이 될 것을 경고하기 위해 남자의 꿈에 찾아온 참이다.
작가는 철저히 남자의 직업에 대해 함구한다. 남자는 분명 돈에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고리대금업인지 회계사인지 혹은 변호사인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그렇게 구두쇠일 필요가 없는데도 지나치게, 그야말로 지나치게 돈을 아끼는 인간이라는 점, 수전노에 피도 눈물도 없는 족속이라는 점, 도무지 남자에게는 좋게 봐줄 만한 구석이 없다.
남자가 기나긴 악몽에 시달리는 동안 독자는 남자를 동정하지 않게 된다.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거다. 그 정도 악몽쯤이야 겪을 만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일 거다. 그리고 작품이 진행되면서 남자는 옛 소설들의 주인공이 다 그렇듯 개과천선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고작해야 악몽 하나에 그렇게 큰 결심을 하는 남자를 보며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까고 있네.
어린 시절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남자의 악몽에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나이를 먹었고, 작품을 보는 눈도 당연히 달라졌다. 그렇게 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눈치 챘겠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이렇다.
<크리스마스 캐롤>.
작가는 찰스 디킨...스 였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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