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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1601 / 악몽] 성장기. by 란테곰



빰 빠밤 빠밤 빠바바 빠암 빠바바밤 빠바바밤 빠밤 빠밤 빠밤빠밤빠밤.


공이 울렸다.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몸은 지쳐 있었지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눈을 뜨자 앞에는 단단한 갑주로 온몸을 감싼 상대가 너무나도 거대한 칼이랄지 쇠몽둥이랄지를 양손에 들고서 날 여전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길게 싸움을 벌일거라면 스피드 타입보단 파워 타입으로 할 걸 그랬다 후회하며 양손에 든 단검을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할 수 없지. 또 가보자.


싸움은 단순했다. 상대가 휘두르는 칼이랄지 쇠몽둥이랄지 여튼 무식한 무기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해내고서 갑주의 틈을 노려 단검을 찔러본 뒤 여차하면 후퇴해 거리를 벌리는 히트 앤 런이었다. 하지만 난 한 방만 맞으면 죽을 것 같고 상대 갑주엔 틈이 보이질 않았다. 체인 아머라도 겹쳐 입었나 싶었지만 그 위에 풀 플레이트를 입고 저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스태미너까지 좋다니. 외진 동네 투기장에 뭔 보스라도 나오셨나. 


그렇게 한참을 촐랑거리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지루했는지 슬슬 상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파리나 모기처럼 귀찮기만 한 놈이라느니, 그냥 손으로 때려잡는 게 어떠냐느니 하는 야유도 들려왔다. 나도 이러고 싶어 이러는게 아닌데. 어쩌다 한 방 스치면 그저 죽을 것 같은 상대랑 붙는 난 얼마나 짜증나겠냐. 라고 한소리 쏴대고 싶었지만 당장 숨을 한 번 더 쉬는 것이 중요했다. 계속 왔다 갔다 거리를 좁혔다 벌렸다 하다보니 아이고 하늘이 노랗고 입에선 단내가 풍기고 다리가 풀릴 지경이다. 그 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물을 마시며 상대를 살폈는데 저 놈은 물도 안 마시고 갑옷을 벗지도 않고 있다. 뭘까 저 놈은. 분명 저런 갑주에 무기까지 들고 장시간을 움직이면서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물도 안 마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순간 아차 싶어 필드를 훑어보았다. 그래, 저건 소환수고 실제론 소환사가 투명술을 이용해 투기장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놈을 잡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라고 고민하던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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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공이 울렸다. 이후 관객들은 투기장 안 모든 지역으로 몸을 움직이며 칼을 휘둘러대는, 이른 바 '병신짓'을 하는 나를 욕해대기 바빴다. 흥, 내 생각은 분명 맞으니까 난 저 놈을 최대한 피하면서 어떻게든 숨어있는 소환사를 찾고야 말테다. 그 때도 나보고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지 어디 두고보자- 까지 생각했을 찰나, 단검 끝에 무언가와 스치는 느낌이 왔다. 지금이다! 모든 칼놀림을 텅 빈 곳에다 쏟아넣었다. 크헉, 하는 짧은 숨과 함께 누군가가 털썩 쓰러지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곧 땅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리송해하던 관객들은 곧 눈치를 채고선 내게 찬사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건 뭐 앞뒤 뒤집기가 명절 전만큼 순식간이고만요. 


그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나며 앞으로 자빠졌다. 그것도 모자라 땅을 훑고 주우욱 밀려갔다. 지면과 맞닿은 채 쓸린 얼굴의 아픔은 둘째고,뒷통수부터 척추까지 일직선으로 큰 고통이 몰려왔다. 뭔가 큰 거를 휘두른 것에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뭐라고? 그렇다면... 턱, 소리와 함께 아까 그 상대가 내 목 옆에 칼을 대어 항복을 종용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난 주먹을 쥔 채로 가운데 손가락만을 들어보여 항복 의사를 전했다. 젠장. 하늘을 꿰뚫고 내려온 빛이 몸을 감싸더니 곧 내 몸을 들어올렸다. 분명 맞다고 생각했는데 무어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렇게 빛을 타고 올라온 곳엔 개구리씨가 있었다. 멋들어지게 꼬인 수염이 매력포인트란 말이야. 개구리씨는 내게 말했다. 오늘 득점은 이천 오백 점입니다. 득점을 상품으로 교환하겠습니다. 등판 전체에 아까의 충격이 남아 제대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지만 어찌어찌 개구리씨가 내놓은 상품 목록은 볼 수 있었다. 생명 유지, 부상 회복, 그리고 남은 점수로 장비 및 성향 초기화를 샀다. 초기화를 살 때마다 할 일이 늘어난다며 투덜댔던 개구리씨는 오늘도 여지없이 투덜대며 투기장의 상금을 계산하더니 내게 돈주머니를 건네주었다.


말끔해진 몸을 털고 일어나 개구리씨 집 바로 옆 상점으로 갔다. 초기화를 해서 장비를 새로 사야 한다 했더니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진 올빼미씨는 이윽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장비들을 열렬하게 침튀기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상대를 만날지 모르고 마법을 익혀두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던 난 일단 올빼미씨의 권유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출장 마법 과외실의 뱀아가씨를 불렀다. 그녀와 함께라면 필요한 마법과 장비와의 관계를 잘 알고 권해주리라. 초기화한 스탯을 어찌 투자할지에도 조언을 해줄 수 있겠지. 물론 그만큼 돈은 들겠지만.


빰 빠밤 빠밤 빠바바 빠암 빠바바밤 빠바바밤 빠밤 빠밤 빠밤빠밤빠밤.


으. 마지막 공이 울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뱀아가씨에게 출장은 내일로 하겠다 급히 전하고 올빼미씨에게도 내일 찾아오겠다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선 정문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급해요 급해- 소리를 지르며 대로를 가로질렀다. 하지만 모두들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겨우겨우 다다른 정문 앞에서 한참을 숨을 골랐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빠바바 빰 빠밤 빠밤 빠바바 빠암 빠바바밤 빠바바밤 빠밤 빠밤 바밤빠밤빠 밤.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핸드폰의 알람을 껐다. 그리고선 일주일 째 계속 이어지는 꿈에 진저리를 쳤다. 대체 꿈에서 몇 번을 죽고 몇 놈을 죽였던가. 영 좋지 않은 기분으로 억지로 눈을 떴는데 바로 눈 앞엔 개구리 인형이 놓여있었다. 멍하니 개구리 인형을 보다가 어쩌면 이 꿈이 이 놈 때문인가 싶어 괜히 개구리 인형을 한 대 때렸다. 수염만 없지 개구리씨랑 완전 똑같이 생겼단 말야 이 놈.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