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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1602 / 눈물] 이것은 피와, 눈물의 기록이다. by 김교주

두 달 연속으로 마감일을 잊었다. 바빴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이번 달에는 심지어, 책은 읽었는데 마감을 해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책은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하자(아니 그걸 니가 정하는 게 아니야).

 

이건 좀 다른 이야기기로 들리겠지만 요즘 나는 TVN 드라마 <시그널>에 푹 빠져 있다. 내 사랑 조진웅느님이 나오기도 하고, 수사물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취향저격. 그리고 놀랍게도 이번의 책을 고르는 데에 드라마가 일조했다. 주제를 생각했을 때 다소 의외다 싶기도 하겠지만 2월에 나는, 눈물 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그것이 알고 싶다>를 읽었다.

 

다들 알겠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싶)는  SBS에서 매주 토요일 밤 방영되는 시사프로그램이다. 1992년 3월 31일, 배우 문성근이 진행을 맡고, 영화 <그놈 목소리>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시작으로 2015년 9월 5일1천회를 맞은 이래 지금까지도 꾸준히 중년탐정 김상중(!)과 함께 토요일 저녁을 지키고 있다.

 

방송 <그알싶>은 제작진이 흘린 땀의 결과물인 동시에 피해자, 혹은 약자들이 흘린 피눈물의 기록이다. 그 방송을 각 카테고리별로 나누어 정리한 책이라고 해서 다를리 없다. 한국 사회의 갑을관계 심화, 위로받을 길 없는 이들이 빠져드는 사이비 종교의 유혹, 분단에서 비롯한 비극, 아동 학대, 장기 미제 사건 등 굵직하고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제작진의 문제 제기는 대체로 날카롭고 때로 섬찟하다.

 

2015년의 장기미제사건 전담팀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형사들이 무전을 나누며 사건을 해결하는 다소 초자연적인 설정의 드라마 <시그널>에는 분명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겠다 싶은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가운데서도 이형호 군 유괴사건, 화성 연쇄살인사건, 신정동 연쇄 살인사건 등은 <그알싶>에서도 다루었던 미제 사건들이다. 책과 시사프로그램과 드라마를 연결시키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단순히 흥미 위주로 이 사건들과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재하는 피해자와 피의자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드라마 시청은 한밤중에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책 속의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은 어두운 밤 귀가길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모든 사건의 뒤안길에 누군가의 눈물이 숨어 있었다.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알싶> 제작진은 경찰도 손놓고 나 몰라라 하던 사건들을 파헤치다 마주친 진실 앞에 좌절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알싶>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는 어느 변호사의 한숨 섞인 기고 앞에서 나도 함께 한숨지어야 했다.

 

다시 <시그널>로 돌아가서....

2015년을 살고 있는 경위 박해영(이제훈 분)이 1995년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포기하니까 미제 사건이 되는 거예요. 형사님,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책 <그알싶>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세 모자 사건을 취재하면서 진실은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언제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믿게 됐다.'

 

밝혀질지 그렇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진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피같은 땀을 흘리고 있다. 그 피땀이 부디 또 다른 누군가의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마르게 해주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서는, 흘리지 않아도 좋을 눈물이 낭비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진실이 드러나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