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잘 안 우는 아이였다.
아마 아주 어릴 때는, 울지 않아야 착한 애라는 소리를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좀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두살 아래 남동생에게 늘 누나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맏딸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조금 더 커서 학교 다닐 나이쯤부터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혼날 때 안 울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선 진짜 한번도 안 울었던 것 같다.. 우는게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서 한참 술마시고 다니던 때가 되어서야- 내가 술에 취하면 얘기하다가 가끔 운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_- 그런 일도 아주 드물게 있었으니까 뭐..
그렇게 나는 잘 안 우는 어른이 되었다.
감수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이나 영화같은 걸 보면서부터는 곧잘 운다 -ㅅ- 다만 난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운다는 것 자체가 뭔가 약해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도 사실 좀 그렇다. 어떤 영화 보고 엄청 울었다고 말하는게 사실 지금도 좀 마음이 안 편하다. (음 이건 써놓고 보니 쫌 이상해 보이긴 하네;;)
20대 때 다니던 직장에서, 한살 아래의 입사 동기 여자애가 스트레스가 폭발해서 펑펑 운 적이 있다. 그애를 달래주기 위해 복도로 데리고 나가 한참을 토닥여주다가, 회사에서 울긴 왜 우냐고 웃으면서 핀잔을 줬더니 그애가 이렇게 말했었다.
"나 원래 잘 울어. 눈물이 나는데 어떡해."
그애한테는 눈물이 나면 참는게 아니라 우는게 당연한 거였다. 울어도 되는 거였다.
나에게는 매우 신선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애처럼 못 운다.
※ 아래 글은 [아이사와 리쿠] 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음
아이사와 리쿠
14세의 소녀 아이사와 리쿠는 다정하고 능력있는 아빠, 완벽한 가정주부인 엄마와 사는 중학생이다. 예쁜 외모와 남다른 분위기로 늘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리쿠에게는 한가지 능력이 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만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 주는 것을 리쿠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대신 리쿠는 사람들이 말하는 동정심이나 슬픔 같은 감정을 모른다. 그런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완벽해보이는 리쿠의 환경은 사실 엉망이었다. 다정한 아빠는 회사의 젊은 여직원과 불륜 관계였고, 완벽주의자에 결벽증이 있는 엄마는 그것을 뻔히 알고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리쿠는 자신이 이렇게 행동해야 엄마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그런 리쿠의 행동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그것은 엄마로 하여금 리쿠에 대해 큰 결정을 하게 만든다.
간사이 지방에 사는 친척 집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엄마는 간사이 지방을 싫어했다. 그래서 리쿠도 간사이 지방을 싫어한다. 간사이의 사투리도, 위생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음식들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리쿠는 전부 싫기만 하다. 리쿠는 간사이에 절대 물들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는다.
그런 리쿠를 흔드는 것은 리쿠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간사이의 사람들이다. 친척들은 리쿠에게 실없는 농담 같은것을 계속 던지면서 리쿠를 편하게 해주려고 하고, 특히 난치병이 있는 리쿠의 어린 친척동생 도키오는 리쿠를 유난히 잘 따르면서 리쿠의 마음을 서서히 풀게 한다. 도쿄에서는 리쿠를 전혀 따르지 않던 애완용 새조차도 간사이 사람들에게는 살갑게 올라앉는다.
간사이에서 맞은 리쿠의 생일날, 친척들은 리쿠를 위해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준다. 분위기상 리쿠는 조금 울어주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왠일인지 리쿠는 그렇게 빨리 떠나고 싶어했던 간사이로부터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좀 더 눌러 있겠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도키오가 예뻐하던 새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도키오가 평소에 하던 말들을 새는 그대로 따라한다. 리쿠 누나에 대한 마음들 담아.
큰 수술을 마친 도키오는 리쿠와 통화하고 싶어하고, 리쿠는 도키오에게 간사이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그토록 싫어하던 간사이 사투리를 따라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
리쿠는 왠일인지 집 밖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는 강가에 놓인 배들 사이에 숨어 앉아 펑펑 눈물을 흘린다.
사람이 봐야만 울 수 있던 리쿠가, 엄마에게서 그대로 받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리쿠가, 처음으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과 감정을 마주한 결말이다.
언젠가 오래 전에- 사람 많은 2호선의 어떤 역에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운 적이 있다. 그때 호흡을 가다듬고 눈물을 집어 넣으려고 노력하면서 생각했다. 다시는 이렇게 울지 않겠다고.
나는 울음으로서 감정을 토해내고 싶지 않다.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는 계속, 잘 울지 않는 어른으로 살 것이다.
다만 저렇게 눈물로서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주 아주 아주 가끔, 부럽단 생각도 들긴 한다..
참 이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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