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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03 / Exotic] 그들에게 이국적인 것. by 에일레스 나는 한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외국에 '가본' 적은 있다. 딱 한번. 그것은 전 직장 다닐 당시에 일본으로 갔던, 1박 2일의 엄청나게 급하고 빡센 출장이었다. 이게 진짜 어느 정도로 급박했냐면, 화요일 오전에 '주말에 일본 출장이 있다'고 통보 받고, 그날 오후에 급하게 여권 신청을 했으며, 금요일에 여권을 수령받아, 토요일 아침 7시 반쯤 김포에서 출발하여 일요일 밤 10시 반쯤 한국으로 돌아오는.. 어마어마한 일정이었다. 팀장님 포함 회사 사람 넷과 가는 출장 따위가 뭐 그리 즐거울 리 있었겠냐만 어쨌거나 첫 해외행은 쪼금 설레긴 했다.. 하지만 설렘은 그게 다였다. 아침 7시 반에 출발해서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예정된 일정들을 소화했고,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들어.. 더보기
[201703 / Exotic] warm shower. by 란테곰 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유치원을 다니던 또래 아이들에 비해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만큼 혼자인 시간도 많았다.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천만 다음의 숫자 단위는 과연 무엇인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보조 바퀴 달린 자전거를 타며 집 앞 공터를 계속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집으로 돌아와 슬슬 눈치를 보다 이층 하와이 형네 놀러갔었다.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뽀글이 파마를 하고선 늘 꽃무늬셔츠를 입고 온종일 팝송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그 형네 집엔 직접 녹음한 팝송 테이프가 가득했다. 같이 방에 앉아 노래를 듣다 얼핏 아는 노래가 나오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말도 안 되는 가사로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이 귀여웠을까. 그 형은 날 .. 더보기
[201702 / 적] 전쟁의 민낯 by 에일레스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이다. 1953년 휴전이 이루어졌고, 벌써 60년이 훌쩍 지났다. 휴전이 장기화되면서 사실상 거의 종전이나 다름없는 느낌이 된지 오래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개념은 사람들 인식에 그다지 크게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갖고 있지 않는 거라는 얘기를 예전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인지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오히려 좀 더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예로 가끔 남북간의 어떤 사건이 생겨 안보에 대한 위협이 부각되면 '빨리 전쟁하자' '북한놈들 정신차리게 해줘야한다' 같은 말을 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나도 전쟁을 겪어본.. 더보기
[201702 / 적] 딱보와 전설의 형. by 란테곰 같은 동네라도 도로 하나를 두고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뉜 우리 동네에선 아이들끼리 묘한 텃세가 있었다. 부모들끼리의 알력 다툼도 종종 있었으니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의 서로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고울 리가 없었다. 이유는 하나, 윗동네 사람들은 대체로 잘 살았지만 아랫동네인 우리 동네는 온 동네가 비닐하우스였다. 윗동네엔 딱보라는 놈이 있었다. 딱지를 잘 쳐서 다들 딱보라고 불렀다. 학교에 가면서 딱지 하나를 만들어 집에 돌아올 때 가방 한가득 딱지를 담아오며 자랑하던 그 재수없는 얼굴은 아직도 기억한다. 게다가 딱보는 승부욕이 강했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다. 하나 잃으면 바로 열 개 스무 개를 꺼내 한 방에 걸자는 식으로 애들을 질려버리게 만들곤 했었다. 그렇게 두어 판을 지면 꼭 지네 삼촌이 .. 더보기
[201701 / 쇼핑] 설국 by 김교주 저녁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밤시중을 들 게이샤를 정한다. 하릴없이 여행에 몰두하는 그는 충분한 유산을 상속받은 한량이고 그래서 그의 삶에는 긴박함이나 간절함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자신 때문에- 유부남인 여행객에게 마음을 주고 그 때문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시골 게이샤에게 알듯 말듯한 동정을 느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련함과 안스러움이지 애정이나 열정이라기에는 그 온도가 너무 미지근하다. 보지도 않은 외국 무용에 대한 글을 써대고, 값비싼 내의를 입고.... 설국의 주인공은 참 묘한 인간이다. 그의 삶은 끝없는 허무와 그 허무를 채우기 위한 돈 써댐의 연속이다. 비록 작품에서 그 낭비벽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곰곰이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먹다 보면 설국의 면면에는 돈 깨나 만지는 유복한 집안.. 더보기
[201701 / 쇼핑] 택배 왔습니다. by 란테곰 쇼핑에 있어서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듯 생산 - 유통 - 판매가 기본이겠다. 다행스럽다 하긴 좀 어렵지만 난 생산도, 유통도, 판매도 다 겪어보았다. 애초에 어릴 적 우리 집은 하우스 농가였기에 생산에 일조를 했었고, 이십 대의 절반은 유통의 선두 주자(?)인 택배 및 배달 등의 일을 많이 했었으며, 또 백화점 푸드 코트니 매장이니 물품 판매도 했었다. 가장 최근에 했던 일이 공장에서의 생산직이었으니 참 경력의 순환스러움(?)이 멋지다. 그 중에서 내 생각을 가장 바꿔준 일 중의 하나는 단연 유통, 그리고 택배 일이었다. 내가 했던 일은 흔히들 택배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고 또 만나는 지입 택배 기사가 아니라 터미널에서의 분류 일이었다. 방학만 되면 하루에 열 명 넘게 일하러 .. 더보기
[201701 / 쇼핑] 이것은 사랑이야기다 by 에일레스 나는 대학 시절 백화점에서 꽤 오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방학 때 교복 판매 알바로 시작해서, 학교 다니면서 주말 알바를 계속 하다가, 휴학하고서 거의 직원과 마찬가지로 쭉 일했었다. 백화점이란 곳은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한 곳이다. '가격비교' 라는 것이 발달하면서 인터넷을 뒤지면 똑같은 물건을 최저가로 구입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같은 물건이라도 더 비싼 것을 알면서 기꺼이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가니 말이다. 그것은 백화점이라는 곳이 다른 쇼핑 장소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서비스'에 있을 것이다. 백화점에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훨씬 정중하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즐기는' 일부 사람들 중에 갑질하는 사람도 나오는 거고.. 그런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