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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05 / 폭행]현실은 항상 만들어낸 이야기를 능가하지 by 김교주

책을 그만 사도 좋을 때라는 게 있다면 그건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지나갔다. 5월 생일을 맞자마자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 책을 주문했는데, 핑계가 아주 구차했다. 원래는 두꺼운 한 권의 책이 문고판처럼 얇은 네 권 분권으로 되어 있어서 출퇴근할 때 읽기 쉬우니까.

 

작년 11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현이가 책을 읽고 싶다며 두 권의 제목을 보내왔다. 그 무렵에는 이미 일산에서 출퇴근 중이라서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한 다음 곧바로 친정으로 배송했고, 그 중 한 권이 <오베라는 남자> 였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내가 먼저 읽었겠으나 그런 이유로 그 책을 읽을 기회는 없었는데, 이번에 소개하려고 하는 <베어타운>이 바로 같은 작가가 쓴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사실 언젠가부터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너무 빨리 읽혀서 책값이 아까운 것과는 별개로(응?) 현실이 소설보다 더 지독하고 드라마틱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비소설은 두껍고 무겁고 라는 약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런 이유로 이 책을 구매했다.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아볼 생각 따위 조금도 하지 않고, 단지 오베라는 남자가 베스트셀러였다면 이 작품도 기본은 하겠지 라는 기대를 했을 뿐.

이야기의 흐름이 즐거웠다 고 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재미 있는 소설이기는 했다. 작은 마을, 10대 아이스하키 스타, 성폭행, 오히려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비난. 현실적이라서 뻔한 흐름이지만 그걸 뻔하지 않게 끌고 가는 힘이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 가볍게 읽을 신간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소개해 주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잠깐 화제를 전환해보도록 하자.

얼마 전 프로야구팀 넥센 히어로즈 선수 두 명이 어떤 사건에 휩싸였다. 그 사건이란 무려 성폭행 이슈였고, 포수와 투수인 두 사람의 보직에 맞물려서 사랑의 배터리 라는 둥 하는 질 나쁜 농담이 떠돌았다.  이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구설수에 올라 있지만, KBO에서는 의외의 신속성을 발휘해서 두 선수에게 활동정지(연봉도 없어, 경기도 못 나와, 연습도 하지 마)라는 높은 수위의 징계를 내렸다(그 발빠름으로 약쟁이들 좀 제때 제때 영구제명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안되겠지 아마).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다. 역시 현실은 소설을 능가하는 법. 소설 속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철없을 10대 소년 소녀인 데다가 1:1의 상황에서 그와 같은 범죄가 벌어지지만, 현실을 보시라. 그들은 2:1의 상황이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심지어 가해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유부남이다. 게다가 모두 성인이었으며, 가해자들은 원정 경기를 떠나서 구단이 잡아준 숙소에서 그런 짓을 벌였다는 혐의를 사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라 일반인으로 따진다고 하면, 이들은 출장을 갔다가 회사가 잡아준 숙소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 된다.

 

폭행, 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성폭행을 떠올리다니 참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실은, 때로 이처럼 만들어낸 이야기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미투 운동과, 양예원 양 사건과, 넥센의 추문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함께 이미 그런 것들에 너무 무뎌져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5월이 이렇게 끝나간다. 행복한 6월을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거기엔 조금 덜 지독하고 조금 더 평화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