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김선우.
고급 호텔의 실장 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실은 조직의 보스 밑에서 충실히 일하고 있는 2인자다.
어느 날, 그는 보스로부터 부탁 하나를 받는다. 보스가 요즘 만나고 있는 젊은 애인에게 남자가 생긴 것 같으니, 보스가 해외로 출장을 나가 있는 3일동안 그녀를 감시해달라는 것.
그렇게 선우는 그녀를 만난다. 어리고 맹랑한 첼리스트, 희수를.
보스의 짐작대로, 희수는 다른 젊은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선우는 그 현장을 잡아내고 보스에게 연락을 취하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을 돌린다. 그리고 희수와 그 젊은 남자친구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고,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고 한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돌아온 보스는 희수를 만나러 갔다가, 어딘가 변한 그녀의 태도에서 뭔가 있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 화살은 '무슨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치도, 보고도 하지 않았던 선우에게로 돌아간다.
보스는 선우에게 묻는다. 왜 그런 실수를 했냐고.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다는 약속만 지켜지면 모두가 좋아질거라고 생각했다는 선우의 답변에, 보스는 재차 묻는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선우가 되묻지만, 보스는 이미 마음을 정해버린다.
선우는 보스의 지시로 땅 속에 파묻히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후 그 곳을 도망친다.
보스가 선우에게 바란 것은 절대적인 충성이었다. 그가 선우를 신뢰한 것은 절대 아무 감정도 갖지 않고 보스의 말만을 충실히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선우의 흔들림을 보스는 감지했다. 자신이 아끼는 어린 애인에 대해 선우가 흔들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보스가 오판한 것인지도 모른다. 설령 선우가 조금 흔들렸더라도 선우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스는 자신의 감을 믿었고, 그것을 밀어붙였다. 오로지 그 이유때문에, 보스는 선우에게 주었던 자신의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뒷부분에서 보스는 선우에 대한 처리 문제로 만난 다른 조직의 회장에게 말한다.
"아닐 수도 있어요. 내 착오일 수도 있는거죠. 근데 조직이란게 뭡니까? 오야가 누군가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실수한 일이 없어도 실수한 사람은 나와야 되는 거죠."
그러면, 선우는 과연 희수에게 흔들렸을까?
사실 영화는 선우가 희수에게 묘하게 끌려가는 느낌들을 묘사한다. 희수는 마치 로리타와 같은 느낌으로 표현되는데, 선우의 시선은 그녀의 뽀얀 귀와 목덜미, 어깨, 이마, 손가락 등에 가 닿는다. 희수가 연주 녹음하러 갔을 때 선우는 잠시 구경을 하는데, 희수의 첼로 소리를 들을 때 카메라는 선우의 등을 비추며 서서히 다가간다. 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했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 나뭇가지가 등장할 때의 나레이션은 이렇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하지만 선우로서는, 그가 바쳐온 충성의 시간들과 마음을 일순간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해 부정당해버린 것이 된다. 스스로가 배신당했다고 믿는 보스로부터 얻은, (선우 입장에서는 자신이야말로 당해버린) 배신의 충격은 그의 몸과 마음 모두에 상처를 입힌다. 그는 당위적으로 반격을 준비한다.
마침내 보스 앞에 선 선우가 보스에게 묻는다.
여기서 선우는 보스가 자신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죽이려한 '진짜 이유'를 말해달라고 한다.
보스가 한 대답은 선우가 생각했을 땐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보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그들은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은 이미 상대방의 답과 상관이 없었다.
마음이 달라질 때, 답도 달라진다.
듣고 싶은 말 역시 달라진다.
질투라는 것은 얼마나 얕은 감정인가.
이런 얕은 감정들을 모아, 깊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 영화가 그랬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넌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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