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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01512 / 매너] I see you,but not like that. by 김교주 공자크의 를 읽을 때의 일이다. 전철로 이동 중에 이 책을 읽고 있는 내 옆자리에 내 또래의 남성이 앉아서 한동안 곁눈질로 책을 넘겨다본다 싶더니 불쾌할 정도로 빤히 내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겨 갔다. 그게 내 책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지나치게 정상인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했던 건 사실이다. 사드의 때에는 조금 경우가 더 심했다. 한동안 절판이었던 책이 재출간된 것이 반가워 수음과 강간, 혼음과 수간이 넘쳐나는 서론 부분을 서점에서 읽은 게 죄라면 할 말은 없으나 책이라는 게 원래 읽으라고 파는 것 아니냔 말이다. 집중해 있던 내 모습에 혹했는지 같은 책을 펼쳐 몇 장 들여다 보다가 다시 내 얼굴을 확인하기까지 할 건 또 뭐냔 말이다. 박완서 선생을 좋아한다는 말에 "정제되지 .. 더보기
[201512 / 매너]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by 란테곰 난 영화를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킹스맨이라는 영화가 나온 이후부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는 말이 크게 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론 검색창에 매너라는 단어만 쳐도 연관 검색어가 따라오듯 저 짧은 문장이 매우 자주 쓰이고 또 자주 보게 되는 글이더라. 저 글은 볼 때마다 가슴이 좀 뜨끔뜨끔하다. 왜냐면 난 매너라는 단어에선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난 어린 시절 (심지어는 애인이 아닌 상대에게도) 잠수남으로 불릴 정도로 연락 두절이 잦아 악명이 높았으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신봉하는 수준이라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뭔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상대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는 등 여러 모로 좋지 않은 습관을 가지고 살아.. 더보기
[201512 / 매너]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니까. by 에일레스 최근에 있던 일이다.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영화를 보러 갔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은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 가면 있는 곳인데, 지하철 시간을 좀 빠듯하게 하고 나왔더니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야 상영관에 들어갔다. 그래도 좌석이 맨 뒷줄이고 통로 쪽으로 세자리 붙어있는 걸로 예매한 터라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는 안 되겠거니 하고 갔는데- 가서 보니 비어있는 자리는 둘 뿐이었다. 어떤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먼저 안쪽으로 들어갔던 엄마가 '여기 저희 자리예요' 라고 말했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그 옆의 일행들과 함께 쑥덕거리더니 미적미적 자리를 옮겨 앉았다. 등산복을 입은 부부 두 쌍이 같이 온 것 같았다. 어쨌거나 우리는 제 자리에 앉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 더보기
[201511 / 야망] 명사. 크게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희망. by 란테곰 최근, 남자가 그렇게 배포가 작아서 어디 쓰냐는 얘길 들었다. 넌 아직 매인 몸도 아니고 할 일도 많은데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 있느냐며. 조금 더 너를 위한 삶을 살아도 괜찮은 거 아니냐며. 내가 그렇게 주눅이 들어보였냐 되물으니 하이고 어깨가 움츠러들다 못해 쪼글쪼글하단다. 어깨 펴라고. 가슴도 펴고. 땅 보고 걷지 말고 앞을 보고 걸으라고. 첫눈이 온 날 예비군 훈련소 교정에서 오랜만에 만난 남자 두 사람이 할 얘깃거리는 아녔지만, 그래도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내준 형님이 고마웠다. 회사를 그만 두고, 퇴직금 지급 문제로 싸우고, 그 사이에 벌렸던 많은 일들을 정리하니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달 동안 집에서 밥을 축내면서 느꼈던 점은, 집구석에만 있으니 사람이 말 그대로 쪼그라든다는 것.. 더보기
[201511 / 야망] 야망조차 사치였던, 한 사내 이야기 by 김교주 "벗과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륜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한자리를 내어 주는 것은 오직 이 항목뿐이다." "저마다 가난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우리들이었다." "서자의 신분이라는 우리의 운명, 세운 뜻을 펴 보지도 못한 채 가슴에 품고만 살아가야 하는 이 삶도 윤회의 한 부분일까." 신분제 사회 조선, 서자, 이덕무. 책을 너무 사랑해서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러나 서자이기 때문에 벼슬길이 막혀 울분을 삼키고 살았다. 책을 그토록 아끼고 소중히 여기면서도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그 귀하게 간직하던 책을 팔아야 했고, 어렵사리 정조의 눈에 들어 마침내 벼슬에 올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으나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 더보기
[201511 / 야망] 야망의 욕구 by 에일레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매슬로우의 욕구 체계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인간의 욕구는 본능적으로 타고난 것이며, 욕구 체계를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보편적으로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된 다음 상위 단계의 욕구 충족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왠지 한번 넣어보고 싶었던 도표..) 매슬로우가 정리한 욕구 체계에 따르면 숨쉬고, 먹고, 자고, 배설하는 등 생존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당연히 가장 하위에 있고 그 다음이 신체적, 심리적 안전을 추구하는 욕구, 그리고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 자기 존중에 대한 욕구, 그리고 가장 상위에 있는 것이 자아 실현에 대한 욕구- 라고 한다.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이 욕구 체계를 채워가는 모습.. 더보기
[201510 / 대립] 동일성과 상이성의 통일. by 란테곰 그와 나 사이에 있는 접점이라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라는 점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고 그는 몇 년이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빨리 들어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부서도 일하는 층도 다른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대부분 그렇듯이, 출근길 혹은 퇴근길에 스쳐 지나가면 간단한 목례만 하는 정도였다. 아, 딱 한 번. 그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연말 부서 간 합동 회식이었다. 처음에야 부서 별로 서열 순으로 딱딱 자리를 잡아 시작했지만 어느 정도 술잔이 돌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오면 내 자리는 누군가가 차지하고 앉는 것이 당연한 때, 마침 눈에 들어온 빈자리를 채웠더니 맞은편에 그가 앉아 있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술을 좀 마시다가 2차로 자리를 옮겼다.. 더보기
[201510 / 대립] 그들의 행복한 리그 by 에일레스 내가 처음 야구를 보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중학교 1학년이던 때였다. 왜 갑자기 야구를 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난 어렸고, 세상은 나름 평온했고, 나는 농구와 야구를 같이 보며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는 연세대 농구부 팬이었고, LG 트윈스의 팬이었다. LG 팬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야구는 원래 연고지 팬이 되는 거라는데, 나는 출생지가(출생지만) 서울이었다. 서울 연고지인 팀은 둘이었지만 그냥 LG를 택한 것 같다. (사실 잘 기억 안난다..) 그렇게 보기 시작한 야구를 고3 때까지는 열심히 좋아한 것 같다. 그때만 해도 LG가 야구를 곧잘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야구를 처음 보기 시작한 94년도에 LG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98년도에도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했던 걸로 기억.. 더보기
[201510 / 대립] 너 때문이다. by 김교주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서 다시 책을 펼쳤다. 자이젠 고로우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정확히는, 어떤 방식으로 작가가 자이젠의 몰락을 그려내는지를 알아야 했다고 말해야 맞다. 그걸 알기 전에는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네 권짜리 이 순식간에 끝이 나고 나는 가만히 침대에 앉아 김명민을 생각했다(!). 나는 하얀 거탑의 열렬한 시청자는 아니었다. 김명민이라는 배우를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어쩐지 그의 작품을 진득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쭉 보게 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내가 독파(?)한 김명민 주연의 드라마는 베토벤 바이러스 하나 뿐이다. 메쏘드 연기의 달인이라는 그의 연기를 좋아하면서도, 어쩐지 그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지나친 감정이입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 더보기
[201509 / 팔다] 개나소나. by 란테곰 내가 ‘투자는 적은 자본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는 점과 ‘장사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일곱 살 때였다. 그건 누군가에게 배웠다기보단 구슬 겜블러로서의 삶(?)을 살아가다보니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는 편이 맞겠다. 난 당시 용돈이던 하루에 백 원을 근 몇 주간 고스란히 구슬에 투자했는데, 온 동네 친구들에게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며 구슬을 싸게 사 쟁여놓다가 내가 굴릴 수 있는 포화점에 다다르면 그 때 정가 혹은 정가보다 조금 더 비싸게 팔았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뭔가를 사먹으며 친구들에게 떡밥을 조금씩 나눠주면 다음에 구슬을 살적에 조금 더 싸게 사고, 그렇게 모아서 팔고. 물론 가끔은 투자에 실패하는 쓰라린 과정도 몇 번 겪었지만, 결국 그렇게 구슬 겜블러의 삶을 청산할 적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