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블로그와 개인 블로그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지 벌써 4년째다. 그러다보니 팀블로그에 내가 써 올린 수많은 글들이, 얼핏 보면 되게 점잔빼고 맞는 말 같지만 사실 보면 수박 겉핥기인 거지같은 글들이 매우 많았다. 해서 이번 글만큼은 개인 블로그에 쓰듯 편하게 쓰되 팀블로그에 들이는 시간과 공을 들이기로 했다. 그게 정리라는 주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글이 되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올해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12월을 보내는 첫 해이지 싶다. 그 흔한 송 - 이라 쓰고 망이라 읽는 - 년회도 크리스마스도 새해맞이도 없이 집에서 혼자 보내지 싶은데, 난 오히려 남들 바쁘고 정신없을 적에 혼자 조용히 올 한 해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 그자체가 만족스럽고 기쁘기만 하다. 다만 한 가지, 술 작작 마시라는 친구의 인사가 헛되게 된 것만 조금 아쉽다. 뭐, 친구 없는 동네에서 놀고 있는 사람의 연말은 이게 당연한 거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잠을 청하는 것이, 반찬 메뉴를 고민하고 효율적으로 장을 봐 준비하는 것이, 내 아침 식사를 저녁 여섯 시에 먹게 된 것 등등에 익숙해진지 어느새 아홉 달이 되었다. 그렇다고 밤에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라 그저 아홉 달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냈나보다. 그 와중에도 야구 보러 사람 보러 대구를 다녀온 것이 작년과 큰 횟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우리 집 주머니 사정은 분명 전보다 훨씬 불투명하고 또 비루해졌으리라.
하지만 딱 한 가지 유일하게 나아진 점이 있었는데, 바로 뒤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동안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일들을 켜켜이 묵히다 보니 마치 창고가 꽉 찬 듯 마음이 내내 갑갑한 느낌이 있었고, 이러다 앞으로 생기는 다른 일들도 창고에 처박으려다 그만 창고가 펑 터져버리면 어쩌나 싶은 것이 내 나름의 고충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매달리다 보니 당장 눈앞을 못 본 것도 또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못한 것도 있었지만, 이 정리 기간은 나에겐 분명 필요한 시간이었고 또 그 시간 덕에 정서적인 안정을 많이 되찾는 등 꽤 유용한 시간이었다.
아, 다른 이들에게 이런 기분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도 결국은 아무런 수입 없이 놀고만 있는 꼴이라 그게 쉽지 않으니 이 점에 대해선 더 길게 말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거나, 흔히들 말하는 ‘재충전 기간’ 은 이미 남고 또 남게 가졌으니 이젠 지난 일보다는 앞을 보자. 내 삶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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