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몇 번을 봐도 안 질리는, 그런 영화 말이다. 나도 그런 영화들이 몇 편 있다. 극장에서 봤고, DVD도 사서 보고 틈틈이 보지만, 케이블에서 방영하는걸 보면 또 채널을 멈추고 정신없이 보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 그렇게 하게 된 첫번째 영화가 아마 이 작품이었던 것 같다.
※ 스포일러가 있..는 것 같음..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원작으로 한 영화 <쇼생크 탈출>은 아내와 아내의 불륜상대를 죽였다는 살인죄로 쇼생크 교도소에 들어온 은행가 출신의 앤디 듀프레인의 이야기다. 살인죄 혐의에 대해 앤디는 한결같이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아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신세다. 앤디는 악질적인 동료 죄수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교도관들에게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쇼생크의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힘든 생활을 돌파하게 된 것은 앤디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였다. 앤디는 우연히 세금 문제로 불만을 가진 교도관 해들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교도관들과 교도소장에게 쓸모있는 인물이 되고, 덕분에 조금 더 편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앤디는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인물이다. 교도소라는 암울한 환경에서도 앤디는 자신과 동료 죄수들을 위해 조금씩 환경을 바꿔나가고, 희망을 놓지 않게 해준다. 그렇게 하는 첫번째 에피소드가 해들리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준 후 같이 작업하는 죄수들에게 맥주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영화 속 화자인 레드는 이렇게 말한다.
앤디가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한 두번째 에피소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나 혼자) 생각하는 부분이다.
교도관들의 업무를 해주기 위해 교도소 내의 도서관 관리 업무를 맡게 된 앤디는 도서관을 개선하기 위해 주 정부에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 마침내 주 정부는 앤디에게 편지를 그만 쓰라는 요청과 함께 책들과 함께 약간의 기부금을 보낸다. 앤디는 기쁜 기색으로 기증받은 물품들을 살펴보다가, 레코드판 하나를 꺼낸다.
멋진 장면이니까, 동영상으로 올려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 '저녁 바람은 부드럽게'
레드의 나레이션:
난 지금도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싶지 않다. 모르는 채로 있는게 나은 것도 있다.
난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의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이 장면에서, 스피커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자 모든 죄수들이 하던 일을 멈춘다. 그리고 멍하니 서서 음악을 듣는다. 나는 이 장면이 음악이라는 것이 가진 매혹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잠시 빠져나와서 오로지 음악 속에만 있게 되는 경험을, 아주 드물지만 하는 때가 있지 않은가.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르지만, 이 때 들은 이 노래와 이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한동안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찾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일로 인해 앤디는 2주간 독방 신세를 진다. 독방에서 나와서 죄수들과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2주간 독방에 있을만큼의 가치가 있었냐는 질문에 앤디는 이렇게 대답한다.
앤디 - "모차르트씨가 친구가 되어줬지."
죄수 - "독방에 축음기를 갖고 들어갔단 말이야?"
앤디- "(머리를 가리키며) 이 안에 음악이 있었어. (가슴을 가리키며) 이 안에도. 그래서 음악이 아름다운거야. 그건 빼앗아 갈 수 없거든. 음악에 대해서 그렇게 안 느껴봤어?"
레드 - "글쎄, 젊었을 땐 하모니카를 잘 불었지. 이젠 흥미를 잃었지만. 여기서는 소용이 없으니까."
앤디 - "이런 곳일수록 소용이 있죠. 잊지 않게 해주니까요."
레드 - "잊어?"
앤디 - "세상엔 이렇게 돌로 만들어진 장소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잊는거죠. 마음 속의 그 어떤 건 아무도 뺏지 못하고 손댈 수 없다고요. 자신만의 것이라고요."
레드 - "무슨 얘기야?"
앤디 - "희망이요."
이때 레드는 희망이란 건 위험한 것이라고 앤디에게 경고한다. 사실 장기수들에게 희망이란 고통과 다를 것이 없었다. 너무 교도소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세상으로 나갔을 때 오히려 그들은 더 살아가는 것이 어려웠다. 영화 중간에 나온 브룩스라는 캐릭터가 바로 그 두려움의 모습을 나타내준다. 레드 역시 그랬다. 그는 의도적으로 가석방 심사 때 가석방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하지만 앤디는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만이 그를 지탱하는 모든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의 앤디의 대사가 참 좋았다. 음악을 들으며, 음악을 마음속과 머릿속에 간직하며, 그것으로 인해 자유를 느끼는 마음이.
마침내 기나긴 고난의 여정 끝에 앤디가 탈옥에 성공한 후, 레드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석방을 받는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앤디가 숨겨놓은 편지를 찾아냈을 때, 앤디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만큼 희망과 자유에 대해 은유적으로 아름답게 말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지금 이 영화는 네이버 영화 평점에서 2위이고 (1위는 <터미네이터 2>) IMDB에서는 평점 1위이다.
재밌는 것은, 정작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해서 빠르게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갔고 거기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영화라는 것이다. (나도 물론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만났다..)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에서는 레드 역의 모건 프리먼이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팀 로빈스는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두 시상식 다 상은 하나도 못 탔다.
결국 좋은 영화란,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시간이 평가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낀다는 건 왠지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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