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년

[201312 / 정리] 가능한 정리, 불가능한 정리 by 에일레스

 

제주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명주, 그리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커리어우먼 명은, 둘은 엄마는 같지만 아빠는 다른 자매이다. 어느날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으로 명은은 제주에 내려온다. 장례를 마친 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문득 명은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빠를 찾아가볼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빠의 얼굴을 알고 있는 언니 명주에게 같이 떠날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영화의 제목은 이렇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2009)

Sisters on the Road 
8.7
감독
부지영
출연
공효진, 신민아, 추귀정, 김상현, 문재원
정보
드라마 | 한국 | 96 분 | 2009-04-23

 

명주와 명은은 하나도 닮지 않은 자매이다. 털털한 명주는 길에서 만난 누구와도 잘 어울릴 줄 알고, 벽에 곰팡이가 핀 모텔 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수 있다. 하지만 예민하다못해 신경질적인 명은은 그런 명주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다. 모르는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명주가 싫고, 명주가 아무렇지 않게 잘 먹는 징그러운 산낙지가 싫고, 곰팡이가 피어있는 구질구질한 모텔방이 싫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자신을 키웠던 엄마가 싫고, 엄마가 그럤던 것처럼 아빠 없는 딸을 낳아 키우는 미혼모 명주가 너무너무 싫다. 명은에게 있어서 아빠 없는 자식으로 자라던 어린 시절은 끔찍하기만 했다. 명은이 아빠를 찾기로 마음먹은 것도 어린 시절 그리움과 미움의 대상이었던 아빠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확인하고, 그 앞에 자신이 당당하게 자란 모습으로 나타나 아빠를 부정함으로서 복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마음 한켠에 쌓여있던 감정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명주와 명은은 그렇게 불편한 여정을 시작한다. 자매는 여행 내내 티격대격하면서 길을 지나고, 그 와중에 명은과 명주가 기억하는 명은의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되어 나온다. 그리고 명은이 미처 알지 못했던, 명주가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가족의 비밀이 밝혀진다.

 

 

 

 

어느 집이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못할 이런 저런 비밀이나 가족사가 있기 마련이다. 나만 해도- 우리 집의 특정한 어떤 이야기를 일일이 설명하기 뭐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한 적이 몇번 있다.

물론 나는 안다. 그래도 우리 집은 꽤나 정상적인 범주에 든다는 것을. 정상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가정도 참 많고, 불화가 일상화된 집도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불평을 하는 것도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아주아주- 가끔, 해보기도 한다. 물론 나는 성품에 흠결이 많은 인간인지라.. 그런 생각을 뚫고 온갖 불만들에 정신이 지배당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아마도 가족간의 문제라는 건 가장 정리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해결이 되는 문제보다 안되는 문제들이 더 많고, 문제 하나가 지나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문제들이 끝나기는 커녕 연속되기도 한다. 우리 집의 경우를 간단히 말하자면, 어제 저녁때 식구들끼리 망년회를 하자며 즐겁게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마지막에는 서로 화를 내고 답답해하면서 끝났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가족의 그림은 물론 이렇지 않지만, 이게 우리 가족이다. 그래서 얼마전 봤던 <어바웃 타임> 속의 지나치게 화기애애한 가족의 모습이 판타지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그런 가족의 모습은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이니까.. ㅎ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게 살아왔고,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올해는 나에게 또 한번의 힘든 한 해였다. 집안 환경과 집에서의 내 위치는 더욱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어떻게 타파될지는 솔직히 전혀 알 수 없다. 내년이 되면, 어쩌면 나는 더 마음 무거운 가족 문제로 고통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사람들은 그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가족사를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헤쳐나가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건 정리하고 싶다고 해서 말끔하게 처리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정리되어야 하는 것은 개인의 무거운 마음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