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크의 <동성애>를 읽을 때의 일이다. 전철로 이동 중에 이 책을 읽고 있는 내 옆자리에 내 또래의 남성이 앉아서 한동안 곁눈질로 책을 넘겨다본다 싶더니 불쾌할 정도로 빤히 내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겨 갔다. 그게 내 책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지나치게 정상인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했던 건 사실이다.
사드의 <소돔 120일> 때에는 조금 경우가 더 심했다. 한동안 절판이었던 책이 재출간된 것이 반가워 수음과 강간, 혼음과 수간이 넘쳐나는 서론 부분을 서점에서 읽은 게 죄라면 할 말은 없으나 책이라는 게 원래 읽으라고 파는 것 아니냔 말이다. 집중해 있던 내 모습에 혹했는지 같은 책을 펼쳐 몇 장 들여다 보다가 다시 내 얼굴을 확인하기까지 할 건 또 뭐냔 말이다.
박완서 선생을 좋아한다는 말에 "정제되지 않은 글을 좋아하네?" 라는 반문을 받아보기도 했고, 고전을 자주 읽는다고 했더니 "고루하고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독서 취향을 쉽게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째서 저런 비난 아닌 비난에 당면해야 하는지 내 스스로 이해할 수 없어서다.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단기 적금을 들어 만기가 올 때마다 책을 산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생일에, 크리스마스에, 아니 그래, 나는 아무 때고 책을 사들이고 아무 때나 책을 읽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묻고 독서라고 대답하면 지레짐작으로 아무 취미도 없으니 독서를 취미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해 버린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의 그 생각은 틀.렸.다.
당신들의 취향을 존중한다. 그대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나는 바라보고, 애써 그것을 이해하거나 수용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나와 다른 누군가의 취향인 것으로 바라볼 뿐이다. 타인과 내가 다를 수 있다는 바로 그 부분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 뿐이다. 그게 내가 지켜줄 수 있는 내 방식의 매너고 에티켓이다. 나는 당신을 본다, 그러나 당신과 다른 방식으로.
그냥 가기 아쉬우니 최근 읽은 고고학 관련서 <천 번의 붓질, 한 번의 입맞춤>을 권한다.
고고학에 저토록 낭만적인 표제를 붙인 출판부에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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