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서 어느 쪽의 가치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을 종종 만나게 된다. 하지만 보편성이든 특수성이든 간에 이 두 가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 왕자를 테마로 잡고 있으면서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던졌을 때는, 다들 예상하고 있겠지만(나만 그런가;?)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만나는 다른 별들의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린 왕자, 왕을 만나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아주 당연하게 이 별의 주인인 왕이 어린 왕자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 왕하고 왕자니까. ... 아니더라 -_-?
첫 번째 별의 왕은 오만하기 이를데 없는 인물. (어린 왕자의 표현에 따르면)자신의 별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쥐 한 마리를 놓고 사형 판결을 내리기를 일삼는 그의 모습은 권위의식에 찌들어 있는 구시대의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가 쥐에게 내린 사형 판결을 뒤집는 것도, 어린 왕자에게 자기 별에 남아 주기를 원하는 모습도 결국에는 외로움의 표현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더 나이를 먹어서였다.
허영심 많은 사람, 술꾼, 그리고 실업가
왕을 떠나 두번째 별을 찾아간 어린 왕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허영쟁이. 이상한 모자를 쓰고서는 갈채와 숭배를 요구하는 그를 뒤로 하고 세번째 별로 가며 어린 왕자는 생각한다. 역시 어른들은 이상하다고. 그리고는 세번째 별에서,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우므로 그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또 술을 마시는 술꾼을 만나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네번째 별에서 숫자 놀음의 노예가 되어 있는 실업가와 조우하면서 어른들에 대한 어린 왕자의 감정은 "이상함"으로 귀결되고 만다.
언제나 그 자리에, 가로등지기와 지리학자
다섯 번째 별에서 어린 왕자는 하루 종일 가로등을 켜고 끄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너무 바빠서 어린 왕자와 여유로이 대화를 나눠줄 시간이 없지만 어린 왕자는 오히려 이전까지의 별에서 만났던 사람들보다 가로등지기에게 호감을 느낀다. 어쨌든, 가로등 관리인은 세상의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까. 어린 왕자의 눈에 쓸모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뿐이었던 셈. 가로등지기는 근면성실하지만 지나치게 고지식해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형상화한 캐릭터 아니었을까.
그 다음 별에서 만나게 된 지리학자도 비슷한 경우. 그는 너무도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하고는 있지만 일에 함몰되어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다.
어린 왕자, 드디어 지구에 오다
마지막으로 어린 왕자는 마침내, 지구에 도착한다. 하필이면 사막에.
그리고 거기에서 비행기를 고치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이상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어른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양을 그려주고, 별을 바라볼 때마다 어린 왕자를 떠올려줄.
생 떽쥐베리는 어린 왕자의 여행기를 서술하면서 분명 인간 군상이 나타내는 특수한 모습들을 형상화하려고 의도했을 것이다. 형상화된 각각의 인물들은 자기 그룹 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모습들에는, 이 모습들의 기반에는, 최초의 한 문단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인간 군상의 다양성이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음은 당연한 일이겠다.
각 별의 사람들은 다들 너무나 개성적이고 또 외로운 이들이다. 어린 왕자는 그들을 만나며 어른들이란 참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들 개개인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 아파하고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들 가운데 가장 어른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어린 왕자가 아니었을까. 어린 왕자야말로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고 있는, 진짜 어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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