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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11 / 진실] 진실이란, 숨기기 위해 존재하고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매직미러. by 김교주



세상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가 죽기도 억울하고, 누굴 죽일 용기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너 죽고 나 죽기를 선택한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죽음의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검은 강을 향해 힘껏 던진다. 

박완서 단편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중에서


박완서의 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여러 가지 강점을 갖지만, 그 가운데 최고의 강점은 칼날같은 문체 속에 숨겨진 따뜻함이다.... 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친절한 복희씨>라는 단편집은 나의 이러한 기대를 무너뜨리지는 않지만, 반드시 따뜻하지만은 아닌 진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또 박완서답다. 

복희씨는 불쾌한 기억으로 누군가의 아내가 된- 하찮은 아내가 된 중년 여성이다. 중풍으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오직 성욕으로만 움직이는 남편을 향한 분노와 타오르는 복수심을 가지고서도 그렇지 않은양 마냥 여리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사는 그녀의 환상은 죽음의 상자를 강으로 던져버리는 순간 끝이 난다. 그것은 그녀 나름의 일보 전진을 위한 복수법이었으리라. 

남편과 복희씨 본인의 동반 자살을 꿈꾸는 환상. 그것이 복희씨에게 숨겨진 진실. 그 진실은 그야말로 진실답게 아주 치밀하고 교묘하게 잘 숨겨져 있으나 반면 강변역 어디쯤에서 그녀가(혹은 작가가) 보여주는 행위로 인하여 또 진실답게 드러나고 만다.  마치 안쪽의 사람을 가리기 위해 바깥쪽에서는 거울인척 하는 매직미러처럼. 안에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유리창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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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내가 이번 달 주제인 "진실" 카테고리에 넣기 위해 이번 달 내내 틈틈이 써둔 글의 전문.
더 손을 보고 첨가할 부분이 많지만 도저히 그럴 여유가 나지 않아 부족한 줄 알면서도 이대로 마감하기로 한다.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