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8년

[201806 / 전쟁] 그들이 만들어낸 것 by 에일레스

 

예전에 '적'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전쟁에 대해 썼던 적이 있다. (http://eseses.tistory.com/275)

그때 전쟁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는 웬만큼 다 썼던지라- 이번에는 전쟁 영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포일러 있음

 

 

 

 

 

 

풀 메탈 자켓 (Full Metal Jacket, 1987)

네티즌 8.68(381) 평점주기
개요 드라마, 액션, 전쟁 1996.02.17 개봉 116분 미국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스탠리 큐브릭

 

 

 

<풀 메탈 자켓>은 미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전쟁의 처참함이나 전쟁 속의 공포를 그린 여타 전쟁 영화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이 영화는 크게 2부로 나눌 수 있는데, 1부는 미 해병대 신병훈련소에 입소부터 퇴소까지의 이야기를 그렸고 2부는 실전에 투입된 병사들의 이야기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Hello Vietnam' 이라는 노래에 맞춰 머리를 삭발하는 남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생김새도, 머리색도, 머리 스타일도 다 다른 그들은 똑같이 머리를 박박 밀고 해병대 신병훈련소에 입소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군대라는 곳은 좀처럼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존재보다는 다수의 군인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머리에 똑같은 옷을 입고 집단의 일부로서 행동해야 한다.

 

 

 

 

 

신병들을 맞이하는 건 베테랑 군인인 하트만 상사였다. 그는 온갖 인격모독적인 언사로 신병들을 몰아붙인다. 병사들을 생김새나 출신 지역에 따라 이상한 별명을 지어 부르고, 훈련하는 과정에서도 욕설과 패드립-ㅅ-으로 혼을 쏙 빼놓는다. 그는 이 훈련소의 목적이 신병들을 킬러로 만드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 전까지 신병들은 사람도 아니라고 말이다.

 

 

 

 

훈련과 제식, 구보가 반복되는 이러한 신병훈련소의 일상에서 튀는 인물이 있었으니 본명은 레오나드 로렌스, 하트만 상사로부터 '뚱땡이' 라는 별명을 부여받은 병사였다. 체구가 크고, 동작이 굼뜨고, 이해력이 좀 떨어지는 레오나드는 아주 간단히 '고문관'이 된다. 분대장을 맡은 조커가 하트만의 명령으로 레오나드 옆에 붙어서 하나하나 알려주고 돌봐주지만 레오나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레오나드를 반쯤 포기한 하트만은 앞으로 레오나드가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레오나드를 벌주는 대신 전체 병사들에게 기합을 주기로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병사들은 한밤중에 잠에 빠진 레오나드를 못 움직이게 결박하고 집단적으로 폭행한다. 조커마저도 폭행에 참여한다.

그날 이후 레오나드는 어딘가 눈빛이 달라진다. 멍하니 있는가 하면, 총에 대고 말을 걸기도 한다. 조커는 레오나드가 뭔가 이상해졌음을 눈치채지만, 레오나드는 오히려 사격이나 훈련에 능숙해진 모습을 보여 하트만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훈련소 퇴소를 앞둔 마지막 날이 되었다.

 

 

 

 

불침번을 서던 조커는 레오나드가 실탄이 든 총을 들고 화장실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조커는 레오나드를 설득해서 들여보내려고 하지만, 레오나드는 갑자기 큰 소리로 제식 구호를 외치며 소란을 피운다. 잠이 깬 하트만 상사가 들어와 레오나드를 나무라기 시작하고, 레오나드는 하트만 상사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총구를 입에 물고 자살한다.

 

 

 

2부는 1부로부터 시간이 약간 흐른 시점이다. 신병이었던 조커는 이제 병장이 되었고, 국방일보의 기자로서 후방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북베트남군이 전국적인 공습을 벌이자, 기자인 조커 역시 전투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조커는 사진기자인 래프터만과 함께 훈련소 동기인 카우보이의 부대에 합류하러 떠난다.

 

 

 

 

2부의 장면들은 거의 온통 아이러니로 가득차있다.

2부 첫장면에서 조커는 몸을 팔러 오는 베트남인 창녀들이 스파이인 경우가 많다고 언급하는데, 어떤 군인도 그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쉽게 가격 흥정을 하고 성매매를 한다. 조커는 전투모에는 'Born to kill'이라는 글자를 쓰고, 가슴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마크를 뱃지로 단 채 전투에 참여한다. 부대로 이동하는 헬기 안에서 만난 군인은 민간인에게 사정없이 총을 난사하면서 '뛰는 놈은 다 베트콩이고, 안 뛰는 놈은 고단수 베트콩이다' 같은 말을 한다. 여자나 아이는 느려서 죽이기 쉽다는 말을 하면서 전쟁이 다 그런거 아니냐고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군인이 말하는 동안 래프터만은 헬기 안에서 멀미를 하듯 계속 헛구역질을 하는데, 이것은 그 군인의 말 자체가 역겹다는 이중적인 표현으로 보여서 약간 웃기기도 하다.) 조커와 래프터만이 카우보이의 부대에 합류했을 때, 그들은 죽은 북베트남군의 시체를 옆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군인들은 방송 카메라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인들은 왜 자유보다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모르겠다'거나 '자기들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왜 고마워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시가지를 통과하던 카우보이의 부대는 길을 잘못 든다. 하필이면 그 곳에는 저격수가 있었고, 탐색하러 보낸 병사들을 차례로 쏜다. 저격수가 한명인지, 부대 하나가 있는건지 알 수 없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분대장인 카우보이는 당황하고, 저격수 쪽을 공격하러 가는 과정에서 카우보이 역시 전사한다. 조커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저격수가 숨어있는 건물로 공격해 들어가고, 마침내 저격수와 맞닥뜨리는데!

 

 

 

 

부대원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리던 무시무시한 저격수는 뜻밖에도 이제 10대 중반쯤 된 어린 소녀였다. 조커는 때마침 총알이 떨어져 대항하지 못하던 차에, 래프터만이 나타나 소녀에게 총을 쏜다.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은 소녀를 부대원들은 두고 가자고 하지만, 조커는 이대로 두고 갈수 없다며 고민한다. 소녀는 부대원들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다가 영어로 자기를 쏘라고 말한다. 그리고 조커가 소녀의 숨을 끊어놓는다.

 

조커는 이 전까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이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처음으로 총을 쏴서 죽인 사람이 이 소녀였던 것이다. 이 장면은 앞서 헬기 안에서 만난 군인에게 조커가 던졌던 질문과 대치된다. 조커는 그 군인에게 어떻게 '여자'와 '아이'를 죽일 수 있냐고 물었었는데, 조커는 여자이면서 아이인 사람을 죽인 것이다. 부대원들은 조커에게 독한 놈이라고 농담을 하고, 조커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서 있는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조커의 나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오늘도 늠름히 역사의 장에 우리 이름을 새겼다."

 

 

 

 

 

레오나드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1부는 전쟁에서 필요한 병사를 훈련시키는 과정과 그 결과로서 도출되는 병사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이 되는가를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그렇게 비인간적이 된 군인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그것이 얼마나 우스운가-를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한 청년들이던 병사들은 인간이 아니라 킬러가 되기를 강요받는다. 조금 모자란 캐릭터인 레오나드는 그러한 목적에 부합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약간 정신이 돌아서 킬러의 형태에 가까워지자 칭찬을 받는다. 레오나드는 그렇게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고, 자신의 '창조주'를 죽이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에게 요구되는 인간형이 그런 '비인간적인' 모습이라는 것은 영화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이 목격된다. 이라크 전 당시 미군들이 이라크인 인질들에게 행한 인권학대가 알려진 적 있었는데, 그때의 내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구타는 물론 성희롱이나 성추행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었고, 그걸 가해자인 미군 본인들이 사진을 찍어 남기기도 했는데, 그 사진 속 미군들은 하나같이 즐겁게 웃고 있었다..

 

1부 중간에, 하트만 상사는 훈련 과정에서 병사들에게 찰스 휘트만과 리 하비 오스왈드를 아는지 묻는다. 찰스 휘트만은 텍사스 오스틴의 탑에서 무차별 난사를 하여 12명을 사살한 살인범이고, 리 하비 오스왈드는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해서 숨지게 한 암살범이다. 하트만은 그들이 해병대 출신임을 언급하며 이것이 '해병 한 사람이 총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실례'라고 말한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만들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 무엇임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