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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1610 / 쓰다] '김하'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by 김교주

나는 국문학도고, 경증의 역덕이다. 너무 자주 한 이야기라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러다보니 내 관심사는 고전문학과 역사학에 여러모로 천착되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달의 책은 오래도록 읽어야지, 마음에만 두고 있던 녀석이었다. 유홍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은 아는 그 양반의 그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제 막 1권을 다 읽었을 뿐이고, 그나마도 바쁜 일상에 쫓겨 한번에 읽어치우지 못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진작 읽었어야지. 오래 전에 다 읽었어야지.

 

외골수에 까탈스러운 성미로 안티도 많고 안티가 많은 만큼 추종자도 많은 사람이 유홍준이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이 양반은 도대체가 중간이 없다. 도 아니면 모, 하는 식의 접근은 그의 추종자에게는 신박하고 속 시원하지만 안티에게는 트집을 잡을 좋은 빌미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뭐 어떠랴, 나는 굳이 부류를 나누자면 추종자에 가까운 것을.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생각했다. 감히 진중권 따위가 미학을 논하다니, 유홍준을 앞에 두고.

 

한국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그의 글은 날이 서 있지만 그래도 따뜻하다. 어디를 어떻게 둘러보아야 할지, 무엇에 중점을 두고 해당 유물 유적을 둘러보아야 할지, 초보 답사자와 고급 답사자(?)를 아우르는 그의 답사기에는 바람직한 지침이 있다. 역사와 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답사에의 감사한 길잡이가 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한국 땅에 숨겨져 있는 숱한 과거의 흔적을 알게 해주는 사전이 된다.

 

어렵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쉽지도 않지만 지루하지도 않다. 강퍅스러워 보이는 외모처럼, 글에서도 가시를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런 가시가 있어서 글을 읽을 맛이 난다. 문화재를 다루는 작금의 세태와 문화적 빈약함을 탓하는 태도에서는 소위 꼰대 내지는 식자의 우월감까지도 느껴지지만 그 태도가 결국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마저도 밉지가 않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유홍준이 중앙일보 등에 기고하던 글들의 묶음이다. 책으로 발간되기 전 이미 숱한 독자의 눈을 거쳤다. 독자들은 유홍준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고, 유홍준은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으며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면서 더 탄탄해지고, 정교해졌다. 반드시 필요한 곳에서는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유홍준은 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 이래서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쓰고 고치고, 또 써야 한다. 유홍준의 겸허함이 담뿍 담긴 글에서 새삼 그 사실을 깨달았다.

 

2권까지를 온라인에서 사두고, 엊그제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서 중고 서점에 들러 3권과 4권을 구입했다. 책 제목을 본 남자친구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 앞에 두 글자를 덧붙여 주고 싶다고 했다. 김. 하.

너라면 훨씬 더 쉽고 편한 글을 쓰지 않겠냐고 하는 남자친구에게 웃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아, 라고 생각했다는 건 안 비밀.

 

 

얼마 전 경주에서 강진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뉴스를 보고 문화재 걱정을 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다가오는 11월에는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좀 더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경주에 사부작 발걸음을 해야겠다.  내가 사랑하고 많은 이들이 경탄한 그곳의 문화재들이 본 모습을 잘 추스르고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