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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1608 / 화해] 원한다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드릴게요. by 김교주

차가운 겨울 바람. 유리를 먹인 연줄이 손에 상처를 만들고, 소년은 아버지의 마음에 들고 싶은 초조함으로 입술을 깨문다. 강건한 사내아이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눈에 자신이 차지 못함을 알고 있다는 건 열두 살 소년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일 것이다.

마침내 연싸움에서 소년이 승리자가 되는 순간, 환호성을 지르는 아버지와 눈을 맞춘 소년이 또 다른 소년에게 마지막까지 자신의 연과 호각지세에 놓였던 그 연을 주워 오라고 고개짓을 하는 순간, 도련님께서 원하시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 드리겠다는 약속이 맺어진 순간.

"아무리 깊이 묻어둬도 과거는 항상 기어나오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인적 끊긴 그 골목길을 줄곧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소년이 그 때 골목길에서 마주한 장면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는 괴로움보다 더한 내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어쩌면 하산은 바바 (아버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가 치러야만 하는 대가이자 내가 죽여야만 하는 양이었다."

소년은 열두 살이었고,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고, 아버지가 자신보다도 자기 몸종인 소년을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질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른 어떤 선택권이 남아 있었을까?  그러나 그날 골목길에서 달아나는 것과 동시에 소년은 지독한 열병을 앓게 되고, 자신이 두번 다시 그날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건 어쩌면 하나의 새로운 형벌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멈췄다면, 소년은 다시 성장해 나갈 수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다시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에 의해 격변의 시대를 겪게 되고, 소년은 고향을 떠나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며 가장이 되어 새 가정을 이루게 되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 그는 그저 열두 살 소년.

한참을 더 나이를 먹고서야 소년은 마침내 정말 어른이 될 기회를 얻게 된다. 과거의 자신과, 또 자신이 희생양으로 삼았던 또 하나의 소년과 드디어 화해할 수 있는 때가 소년 앞에 도래한 것이다. 소년은, 아니 아미르는 이번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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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드 호세이니가 의사라는 것,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라는 것, 이 책이 그의 데뷔작 이라는 것 따위를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매력적인 데뷔작을 내놓는 작가는 많지만 할레드 호세이니처럼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책을 덮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혼란스러운 기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인도 작가인 줄 알았어.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 결말을 이야기할까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신 마지막 페이지의 이 문장을 적기로 한다 .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