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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1608 / 화해] 불편함. by 란테곰

 

화해라는 말을 꺼내기 위해선 그 전에 문제가 있어야 한다. 잘못이나 실수, 배려의 부족, 오해 등 그 종류는 다양하지만 일단은 일정 수준 이상의 대립을 유발하고 문제가 생겨야지만 그 다음에 화해라는 단어를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즉 기본적으로 화해라는 단어 밑에는 불편함이라는 요소가 깔려 있고,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따른 선택지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단 화해는 용서나 이해 등 필요한 요소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선택이고, 그렇기에 화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상대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이별과는 달리 필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는 것이기에 그만큼 더 어려운 선택이다.


그래, 남 얘기 하듯 얘기하라면 이렇게 쉽게 정리할 수 있다. 얼마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이 되면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이렇게나 쉽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알고 있으면 뭐하란 말인가. 내 잘못이 맞고 그것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만 그 말 외엔 달리 떠오르는 말도 없어 계속 미안하다는 말밖엔 안 나오고, 그러다보니 뭐가 미안하냐는 궁극의 카운터를 맞고서 조개마냥 입을 딱 다물어버리는 건 아주 전형적인 문제다. 아주 가끔 그 무엇이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해 거기에 대해서 조목조목 해명을 한답시고 주절대다가 남 얘기 하듯 정리만 하느냐며 도리어 상대를 더 화나게 만든 경우도 많았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 이것도 안 통하고 저것도 안 먹힌다. 전전긍긍. 순풍에 돛 단 듯이 모든 게 행복할 때가 있다면 모든 것이 답답할 때도 있어야 공평하겠지만, 이런 공평함이 오히려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안 그래도 불편함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고, 아무도 그 상황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꺼낸 말들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목소리 크기를 높이게 만든다. 그 불편함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일을 크게 만든다. 그렇게 얽힐 대로 얽히고 나면 곧 체념하고, 벌어진 일들에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리고 난 당신과의 관계에서까지 이런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당신과의 트러블 이외에도 신경 쓸 일은 무궁무진하다는 핑계까지 앞세우면 돌이킬 수도 없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시작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들었던 연애도, 내 행복과 그 사람의 행복을 한 곳에 뭉뚱그려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연애로서는 종착지에 다다른 것은 아니냐는 얘기를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연애도, 그래봐야 결국 내로남불 한 마디엔 아무 것도 할 수도 없는 그런 연애도. 나만 좋으면 되니까, 나만 괜찮으면 되니까, 내가 버텨내면 되니까, 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연애도 결국 그렇게 버텨내질 못하면서 무너졌었다. 화해라는 것, 참 어렵다.

 

 

 

. 여기까지가, 근본적인 원인을 빼고서 궁시렁대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아까도 말했듯 화해의 근본엔 불편함이라는 요소가 깔려 있고, 그 요소가 만들어진 원인을 만들어낸 문제점이 분명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선 깡그리 무시한 채 이렇게 되었고 저렇게 되었다 결론 짓고 일을 벌여버리니 모든 것이 틀어지는 것이다.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더라도 이게 잘못됐다,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그러니 미안하고, 미안했다. 고 솔직히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렵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라고 써놓고선 나도 못 하고 있다. 벌써 수십 번 쓰다 닫고 쓰다 닫고를 반복하다 그만 푸욱 묵혀버렸던 메일 창을 다시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