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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1603 / 가짜] 비슷한 것은 가짜다 by 김교주

유튜브는 뭐랄까,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지 알 수 없는 골목길 같아서 가끔은 관련 영상에 내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는 결과물들이 나타나곤 한다. 그런 이유에서 트루디라는 아해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보게 된 적이 있다.

 

나야 힙합은 알지도 못하는 보컬 덕후 목소리 천착의 청자라서 딱히 쇼미더머니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지만 저 트루디 라는 래퍼가 유명 여성 래퍼 윤미래 씨와 매우 흡사한 랩을 구사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동영상을 본 이후의 내 느낌은, 냉정히 말하면 이랬다.


"훨씬 더 완벽하고, 훌륭하고, 제대로인, 그러니까 모든 면에서 카피캣보다 나은 오리지널이 있는데 내가 왜 가짜를 보고 들어야 하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한다.


동의.
그러나 저 말은, 어디까지나 모방품이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있을 때에나 쓸 수 있는 말일 거다.
비슷하게 흉내낸다고 해서 원본, 원판, 진짜의 아우라와 능력치를 넘어설 수 있지는 않을테니까.

감히 말하건대 저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도 이 말이 그대로 통용될 거라고 믿는다.

 

누군가의 삶에는 그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개인적인 역사와 숨결이 깃들어 있을 것이고, 이 삶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가 쏟은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그를 이루는 근간일 것이라고. 따라하다 보면 비슷해지기야 하겠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그 사람과 같아질 수는 없는 법이라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한다. 닮아가다 보면, 비슷해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기도. 그러나 비슷한 것은 결국 같지는 않은 법이다. 비슷해지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서가에서, 학자라기 보다는 이제 저술가에 가까워진 정민 선생의 책을 다시 꺼내어 <불이당기>에 담긴 연암의 말을 재인용하기로 한다.

"좋은 그림은 그 물건과 꼭 닮게만 하는 데 있지 않다.(중략) 잣나무를 그리려거든 잣나무의 형상에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마음 속에 푸르른 잣나무가 서 있지 않고는, 천 그루 백 그루의 잣나무를 그려놓더라도 잎 다 져서 헐벗은 낙목과 다를 바가 없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워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중에서. 

 

 

아 정말 죽을 것 같은 날들이다. 쿨해지고 싶으나 그렇게 되질 않네. 빌어먹을 일.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