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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01408 / 결혼] 결혼이 뭐죠 먹는건가요 by 에일레스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독신주의자(에 가깝)다. 괄호 안의 저 말을 굳이 넣은 이유는, 글쎄..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약간 발을 빼 두는 거라고 하자. (사실은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면 거부감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서 몇년 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독신주의를 생각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됐다. 20년도 더 됐다면 믿겠는가? 내 최초의 기억으로는 열한살 때부터다. 그 나이의 내가 뭘 알았겠냐만, 지금 생각으로는, 어쩌면 나는 그때쯤부터 내가 결혼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나는 결혼에 대한 열망? 욕구? 그런 것이 없다. 내 주변만 해도 '결혼은 서른살쯤엔 하려고요'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 얼마전에 <비정상회담>에서도 결혼에 대한 주제가 나왔을 때 나온 이야기 중에 '2년 안에 결혼하고 싶다' 같은 말이 이상하다는 것이 있었다. 난 그것이 사람들이 결혼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면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몇을 낳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사람들에게 '인생 계획'으로 심어져있기 때문인 거다. 그리고 나는 그 중에 하나를 내 인생 계획에서 뺀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결정적으로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살아오면서 본 부부들 중에 정말 행복해보인다 싶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물론 내가 너무 까다롭게 생각하는 탓도 있겠지.. 어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 보면 결혼하고 싶지 않냐고 묻기도 하던데, 별로.. ;; 내가 아기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빨리 결혼하라는 소리도 종종 듣는데, 아기를 좋아하는건 좋아하는거고 내가 키울 자신은 없다. 내 인생도 책임 못 질거 같은데 다른 인생까지 책임지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결혼 같은 것에 환상을 가지는 것도 좀 더 어리고 순수한 나이여야만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어린 나이에 만나야 첫눈에 반해서 불꽃이 튀고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죽네사네 하고 도망쳐서 몰래 둘만의 결혼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간다며 같이 죽기도 하고.. 그런게 가능한거다. 하지만 난 어렸을 땐 남자애들이랑 적대관계에 가까웠고, 그보다 조금 더 컸을 땐 주변에 남자가 없었고, 그보다 더 커서는 남자들과 형제처럼 놀았고.. (읭)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한 영화가 떠올랐다.

그거슨 바로..

 

 

 


겨울왕국 (2014)

Frozen 
8.4
감독
크리스 벅, 제니퍼 리
출연
박지윤, 소연, 박혜나, 최원형, 윤승욱
정보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가족 | 미국 | 108 분 | 2014-01-16

 

(출연에 이디나 멘젤, 크리스틴 벨-이 안나오고 한국 성우들 나오는게 좀 참신하군..)

 

올 초에 개봉하여 엄청난 인기를 몰고 지나갔나-싶다가도 아직도 끊임없이 들리는 렛잇고와 곳곳에서 출몰하는 엘서 패션 꼬마들로 인해 한번씩 생각나는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모티브를 따온, 뭐든지 얼려버리는 능력을 가진 엘사지만, 실질적으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동생인 안나다. (아니, 안나가 주인공인가? 출연 비중도 더 크긴 한데..) 엘사가 방에 틀어박혀 살게 된 것은 어릴 때 안나가 눈사람 만들자고 난리쳐서 (ㅠㅠ) 같이 놀다가 일어난 사고 때문이었고, 엘사가 아렌델을 떠나게 만든 것도 안나가 만난지 하루도 안 된 남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하겠다고 난리를 쳐서 (ㅠㅠㅠㅠ) 그렇게 된 것이었으니까.

안나는 어렸고, 소녀였고, 영문도 모른채 성에서 심심하게 살고 있었고.. 그러니 사회성이 좀 떨어져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음. 어쨌든 안나가 한스와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고 난리치는(!!) 부분의 노래는 좋으니까 잠깐 보도록 하자.

 

 

 

 

나의 부모님은 또래 다른 부모님들에 비해 연세가 좀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내가 어릴때부터 '22살만 되면 결혼시킬거다'라고 하셨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만큼 아빠는 자식들이 빨리 결혼하길 바라셨던 것은 사실이다. 엄마는 오히려 결혼을 하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하라는 편이고, 내가 결혼 생각이 없다는 것도 슬쩍 말한 적이 있지만, 아빠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계신다. 오늘만 해도- 다음주가 엄마 생신이어서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을 먹고 왔는데, 아빠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같이 일하는 다른 분이 딸이 결혼을 안하고 있어서 속상해한다는 이야기와 일하는 사무실 소장네 손주들이 놀러왔었는데 아주 예뻐 죽더라는 이야기를 넌지시 하셨다.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태연하게 폰을 만지며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이야기는 사실 이런거다. 예전에 아빠가 해줬던 이야기인데, 아빠 아는 분의 딸이(당시에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다고 했던 것 같다) 결혼 안한다고 그러고 있었는데 그 아빠 아는 분이 갑자기 큰 병이 생기자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며 급히 선을 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이다. 결혼 자체가 효도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런 식으로 진행을 해도 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남았었다. 그 사람은 과연, 그 후로 그냥 잘 살았을까?

 

일반적인 동화에서 결혼은 사랑의 완성처럼 묘사되곤 한다. 그리고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이어지는.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되고, 그 뒤에는 훨씬 더 많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당장 네이트판에 가보라.. 정말 '사랑과 전쟁' 못지않는 온갖 험악한 이야기가 아주 흔하게 판을 친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측면만 결혼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의 자잘한 즐거움이 더 생길 수도 있고, 그것을 같이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어쩌면 결혼하기보다도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래, 중요한 건 어떤 사람과 인생을 함께할 것인지-가 아니겠는가. 가장 중요한, 내가 결혼하고 싶을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가 나는 가장 의문이다. 그런 사람과 만났다고 해서 남은 삶이 정말 행복할지도 의문이고.. 내가 결혼을 해도 될 만큼 제대로 된 인간일지도, 솔직히, 확신이 안 선다.

 

 

나이를 꽤 먹었다고 생각하는데도 인생에 대해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기분이 든다.

그냥 크게 욕심 안내고 적당히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