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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1611 / 분노] 분노하라, 바로 지금. by 김교주

 2011년 11월 21일, 그무렵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가 그무렵 유행하던 SNS에서 그무렵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을 내게 선물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이 책을 사내라고 요구했고 그는 삥을 뜯겼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해 이토록 분명하고 상세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은, 책 표지 안쪽에 아주 선명하게 그의 이름과 날짜가 써 있기 때문이고, 그즈음 내가 돌베개의 마케팅 팀장님과 나름 가까운 사이였으며, 이 책은 돌베개에서 출판된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2011년 읽은 책들 가운데 최고였던 <분노하라>가 2016년에 이르러 또 한 번 내 손에 쥐어지리라고, 나는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90세가 넘은 레지스탕스 노투사는 자신의 레지스탕스 이력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레지스탕스가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던 금권이 전에 없이 이기적이고 거대하고 오만방자해졌다고. 그리고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사람들이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없었다고.

 스테판 에셀에 따르면,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그리고 이 노투사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고 힘 있고 참여하는 투사가 되기를 권장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이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라는 그의 역설은 놀랍게도 2016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소소한 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분노하되 비폭력을 유지할 것, 평화적으로 봉기할 것을 외치는 스테판 에셀을 보고 있으면 그가 현재의 대한민국을 예견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금요일마다 장벽 앞으로 걸어가 어떠한 무력 행위도 없이 항의시위를 하는 빌린 시의 시민들의 모습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 오늘날의 대한민국 국민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압제에 반대하는 비폭력의 효과 앞에 당혹스러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스테판 에셀의 말은 정치인들이 촛불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지난 주 토요일, 촛불이 100만을 넘어 200만을 향해 가던 날 광화문에 있었다. 동행하던 친구와는 인파에 휩쓸려 삽시간에 헤어졌고, 눈 내린 끝에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지만 안치환과 양희은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수십만 사이에 끼어 있자니 덜 춥고 덜 외로웠다. 그 날 그 자리의 모두가 다 똑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분명히 그 시간 군중은 광화문 뒷자락 푸른 기와 지붕 아래 어떤 누군가에게 분노해 있었고 그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거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이 책을. 스테판 에셀을.

 할 수만 있다면 2013년 2월 타계한 그에게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여주고 싶다. 오늘의 광화문 광장을 알려주고 싶다. 보라고, 여기 당신이 생각하던 그 모스 그대로의 군중이 있다고. 불의 앞에 분노할 줄 알고 분노 가운데서도 이성을 간직할 줄 아는 이들이 백만 넘게 저기에 모여 있다고 말하고 싶다. 노투사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