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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01310 / 톨스토이]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by 김교주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두 명의 러시아 문호가 있다. 러시아 문학의 양대산맥,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다.

국문학 전공자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박경리 선생이라면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의 살 길을 터준 것은 저 두 사람일 것이다. (지금에라도 당장 박경리와 박경리의 작품을 소재로 한 논문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보자.)

 

국내 문단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를 톨스토이보다 좀 더 쳐주는(?) 분위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톨스토이가 대문호라는 사실에 흠집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써낸 작가들이라서 단순 비교가 어려울 뿐더러, 작품에서 다루는 소재나 분위기 자체가 톨스토이가 빛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둠에 가까워서 개인적으로는 양쪽 모두를 좋아하기는 힘들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의) 의무감으로 읽은 반면, 톨스토이는 좋아서(!) 읽었다. 러시아 문호라는 세부 카테고리를 정하면서 내가 소개한 책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그런 성향을 알 수 있다. 물론 톨스토이도 반항아적 측면을 갖고 있어서 아주 밝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이번 달 주제로 톨스토이를 내놓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었다. 책 한 권을 골라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쓸지, 톨스토이의 작품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해볼지에 대한 고민들이 주를 이루긴 했다. (이 자리를 빌어 톨스토이를 주제로 한 일상을 글로 써내려가야 했던 김태화군에게 약간의... 아주 약간의 미안함을 표한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피했잖아?)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물을 이제부터 펼쳐볼까 한다. 소심하게.

 

 

 

내가 부활을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학생 시절 내 취미는 학교 도서관 한켠을 가득 채운 세계문학전집을 순서대로 읽어치우는 것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내가 평생 읽어야 할 고전은 그 시절에 다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물론 그 시절에 다 까먹었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국어 선생님이 학급 전체에게 물었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느냐고.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던 학생들 가운데 부활을 읽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국어 선생님은 그럴리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 주인공 이름을 물었고 나는 아주 자랑스럽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너무 어려워서 기억이 안난다는 설명까지 덧붙인 이 맹랑한 신입생에게 그는 비웃음 섞인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여자 주인공 이름은 기억하냐고.

"카츄샤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일화는 지금도 내게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님은 대번에 비웃음을 거둔 것은 물론이고 기특해 죽겠다는 표정을 만면에 가득 띤채 그날 이후 나를 무척 예뻐해 주었고, 친구들은 내 대답이 나오고 선생님의 놀랍다는 얼굴을 확인한 직후 환호성과 함께 문학소녀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다른 국어 선생님의 수업에서, 내가 광염 소나타와 광화사를 연계시켜 읽은 유일한 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별명이 나를 고교 시절 내내 따라다녔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도 도저히 부활의 줄거리를 설명할 수가 없다!

만일 저때 선생님이 내게 남주나 여주의 이름이 아니라 부활의 내용을 물었다면 나는 문학소녀가 아니라 사기꾼에 등극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굳이 이 작품을 요약해야 한다면....

젊어서 아름다운 하녀를 농락한 공작이 나중에 그녀가 타락한 걸 발견하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통감하다가 나중에는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 회개를 통해 용서를 빌며 영혼이 부활....하는.... 내용이랄까.

물론 이 책을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부활을 일컬어 톨스토이의 역작이라고도 하고, 예술적 성서라는 표현으로 칭송하기도 한다. 내게 있어 톨스토이가 그렇다. 시대와 현상을 논하면서도 항상 예술에 발담그고 있어야 하는 작가의 숙명을 잊지 않은 천재. 문학의 예수라고 할까.

 

겨울이 오고 있다. 눈 덮인 시베리아를 향해 창녀 카츄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네흘로도프 공작의 심정을 생각하며 사무실 키보드를 두드린다. ... 아 이게 무슨 개소리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