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히트 이후 일정한 주제가 느껴지는 세 편의 장편 영화를 연이어 발표했다. 이 세 영화를 묶어 흔히들 '복수 3부작'이라고 하는데,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그리고 오늘 얘기할 <친절한 금자씨>가 그것이다.
(아래 글은 영화 내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
이 영화는 어린 아이를 유괴, 살인한 혐의로 13년간 복역하고 나온 '이금자'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교도소에서의 그녀의 별명이 바로 '친절한 금자씨', 또는 '마녀 이금자'이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금자씨'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금자씨의 이야기는 고등학생이던 19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신을 해버린 소녀 이금자는 학교에 교생으로 왔었던 백선생을 찾아가 같이 살게 된다. 금자가 20살이 되었을 때, 백선생은 금자에게 '착한 유괴와 나쁜 유괴'에 대해 말하고, 6살 먹은 원모를 유괴한 후 몸값을 받고 살해한다. 그리고 금자의 딸을 볼모삼아 자신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라고 협박한다.
그로부터 13년 후. 마침내 감옥에서 나온 금자씨는 교도소에서 같이 복역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도움을 얻는다. 이것은 금자씨가 교도소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친절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고, 백선생을 향한 금자의 오랜 복수 계획의 실현을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금자씨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커다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원모와 그의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고, 둘째는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버려져 호주로 입양된 딸 제니에 대한 죄책감이다. 그 모든 죄악의 원인은 백선생이며, 그렇기 때문에 금자씨는 백선생을 잡아 복수하려는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
무엇보다도 금자씨는 자기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녀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곧 원모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손가락을 자름으로서 용서를 빌려고 한다. 그리고 손가락의 접합 수술비로 금자씨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노동해서 벌었던 돈을 몽땅 써 버린다.
사실 처음에 나는 이 부분을 감독이 중간 중간 끼워넣은 코미디의 한 요소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이런 부분 역시 금자씨가 속죄를 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교도소는 그녀가 벌을 받는 장소였고, 거기서 얻어진 돈 역시 죄값을 치르는 것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백선생에게 아이를 잃은 부모들(정확히는 누나도 있고 할머니도 있지만)이 모여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를 알게 되고 금자씨의 지도에 따라 다같이 백선생을 처단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부모들이 백선생을 '어떻게 할까'를 같이 얘기하는 것에만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 이것은 금자씨가 복수를 단행하기까지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준비했던 것과 대치된다. 부모들은 의논의 과정을 거쳐 경찰에게 넘기기보다는 개인적인 처벌을 하기로 결정한다. 각자 차례를 정해, 각자의 흉기를 이용해 직접적으로 백선생에게 벌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금자씨는 백선생에게 직접적인 벌을 내리지 않는다. 그녀는 전체적으로 진행 과정을 이끌 뿐이다.
앞에서 말했듯, 금자씨가 '벌'을 내리는 방법은 매우 직접적이다. 마치 함무라비 법전 식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연상시킨다. 금자씨는 제니에게 '죄를 지었으면 속죄를 해야한다'고 말하는데, 죽은 아이의 부모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며 용서를 비는 방식이 바로 그런 일면을 보여준다. 백선생에 대한 복수 역시 단순히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것에 대한 대가라기 보다는, 그의 죄를 벌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백선생을 잡고 나서 원모 말고도 백선생이 유괴해 죽인 아이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아이들의 부모를 불러모은 것도 그런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선생을 벌하는 대상이 자신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죽음의 댓가를 동일한 방식으로 백선생에게 돌려준다. 금자씨는 죽은 백선생의 얼굴에 총구멍을 두어개 내었을 뿐이다.
물론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렇게 해도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금자씨도 안다. 그래서 그녀는 백선생의 시체를 파묻는 광경을 지켜보며 울면서 웃는다.
영화 첫 장면, 출소하는 금자씨에게 전도사가 다시는 죄 짓지 말라는 의미로 준 두부를 그녀는 받지않고 접시째 밀어 버린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금자씨는 죄 짓지 않은 순수한 영혼인 제니의 위로를 받으며 자신이 만든 두부모양 케이크에 얼굴을 박는다. 두부처럼 하얗게 살자고 하면서. 그녀의 구원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자씨의 환상 속에서 나타난 원모는 금자씨가 사과의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의 입을 막아버린다. 금자씨는 용서받지 못했다. 영화 속 나레이션으로도 나오듯, 금자씨는 영혼의 구원을 끝내 얻지 못했다. 아마도 평생 그녀에게는 죄책감이 따라다닐 것이다. 딸 제니 역시 호주의 양부모를 따라 갈 것이다. 이제 복수의 대상마저 없어진 괴롭고 고독한 인생, 그것이 진짜 금자씨에게 내려진 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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