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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08 / 퀴어] 조선의 퀴어 by 김교주

주기적으로 알라딘 북스토어 앱을 켜서 추천 마법사가 어떤 책을 내놓았는지를 확인하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회사에서 만화책만 아니면 무슨 책을 사건 우리가 다 비용을 지불할 테니 네 마음대로 하렴, 그리고 그 책은 영원히 네 거란다 를 시전하는 와중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 책도 결국은 그렇게 건졌으니 신나게 자랑 한 번 하고 넘어가야겠다. 우리 회사 짱이시다(책 사줄 때만). 


아마도 조선사를 좋아하는 내 성향을 알라딘이 읽었으리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다. 알라딘에서 나는 그 동안 <동성애>니, <섹스북> 따위의 책을 사 모았었으니 <조선의 퀴어>는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주 당연한 추천 도서일 수 밖에 없었으리라. 


매우 불온한 생각을 하면서 책을 주문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포르노를 필요로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반드시 누군가의 벗은 몸일 필요는 없다. 좋은 예로, 먹방이 인기를 모으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아닌 타인의 식생활을 엿보고,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을 보면서 내 식욕을 자극 당하고, 결국 먹방이란 food porn의 다른 이름이다. 이런 의식의 흐름을 놓고 생각하면 <조선의 퀴어>는 어떤 종류의 포르노일까.... 음, 조선 LGBT 포르.... 아, 수위가 위험해지고 있다. 


불온한 기대가 독서를 부른,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 더 생각해보니 <소돔 120일>이 있었다. 몇 번 이야기했던 책이기는 한데, 3학점짜리 발표수업에서 (이 수업은 내 기억이 맞다면 필답고사 따위 없었다) 주어진 20권의 고전 가운데 한 권이 <소돔 120일> 이었고, 책의 제목이 주는 범상치 않은 기운 때문인지 아무도 이 책을 고르려고 하지 않아서 내 차지가 되었다. 고백하건대 야할 거 같아서 나는 좋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돔 120일>은 야하다 못해 수위가 너무 높아서 힘들었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조선의 퀴어>는 수위가 높은데 야하지는 않았다(?). 뭔가 문장 호응이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기분 탓이다. 분명히 <조선의 퀴어>는, 읽으면서 성욕을 자극하는 데가 한 군데도 없는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 자체는 19금을 한참 상회하니까. 책을 몇 챕터 읽은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편집자의 작명 센스에 박수를."


책은 제목에 매우 충실하다. 조선왕조실록이며 구한말의 신문 기사들을 찾아내어 그런 레퍼런스들을 기반으로 그 시기 조선의 성소수자들의 삶을 엿볼수 있게 해주는 한편, '에로-그로' 같은 그 시절의 신조어를 소개하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너무도 당연히 그 시기에도 동성애자가 있었고, 양성애자가 존재했으며, 이른바 사방지 라고 하는 양성구유인도 살았다. 더 놀라운 건 이미 그 시기에 성전환수술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 시기 조선은 이들을 변태로 규정하고 이야깃거리로 삼았다는 사실인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을 사는 우리도 그들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100년이 지났는데도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한채, 오히려 합법화니 뭐니 하는 뜨악한 말들이 오가는,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동성애가 언제부터 범죄였는지 모를 일이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이 책을 권하지 않겠다. 그러나 과거의 퀴어에 대한 시선이 궁금하다면 기꺼이 추천할 만한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흥미거리가 아니라 본인 수업의 전공 도서 쯤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썼으리라는 의심에서 비롯한 불편함을 견딜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