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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06 / 전쟁] 아직, 우리는 by 김교주

1948년, 여순 반란사건이 터진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꼬막으로 유명한 그 벌교 맞다)에서는 좌우익간의 사상 대립이 심화되고 빨치산과 토벌대의 대치가 지속되면서 죽고 죽이는 전쟁이 벌어진다.




인민재판, 공산주의, 빨치산, 지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치열한 대립을 다룬 문학 작품은 많겠지만 한국 문학 가운데 최고봉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이 책을 고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비 며느리에게 자신의 이 작품을 필사해 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카더라 는 작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실제로 그녀는 필사를 완성했고,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폼 나는 하드커버 전집으로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나는 이 책을 (내 사랑) 알라딘에서 문고판으로 2만원도 안 하는 가격에 구매했다. 책은 아주 작고, 매 권이 한 손에 쏘옥 들어오고, 아버지는 너무 작은 활자 때문에 <태백산맥>을 다시 읽을 기회를 잃었다며 그런 책을 산 나를 원망하셨다. 그리고 나는 이 작품을 지루함과 속상함을 달래며 끈덕지게, 끈기를 갖고 읽어 치웠다. 


"하, 호로자식덜. 애국자 아닌 눔은 하나또 웂데."

"힝, 농민 안 위허는 눔은 어디 있고?"

"다 좆이나 뽈 씨벌눔덜이여. 전분에 입 달린 새끼덜이 다 머시라고 떠벌렸어. 토지는 싹 다 농민헌테 준다, 농민언 나라의 쥔이다, 허고 떠는 눔덜이 그눔덜이여. 근디 농지개혁은 워치케 했냐 그것이여. 개잡녀러 새끼덜."

<태백산맥> 중에서


2015년 봄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있었던 때가. 그 해 겨울이 되어서야 독서는 끝이 났고, 조정래가 버리는 언어의 마법은 지극히 흥미롭고 아름다웠으나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나에게 단순히 읽고 재미있었다는 감상을 남길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외국인인, 그리고 그 때는 남자친구였던 내 남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한국을 떠나 아주 오래 외국에서 살았고,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가 느낀 가장 큰 공포는 뜻밖에도 북한과의 전쟁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와의 연애가 길어지면서 나도, 어쩌면, 한국의 숱한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눈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판문점 선언이, 북미 회담이 성사되고 그래서 휴전이나 정전이 아니라 종전이 코 앞일 것 같은 지금, 새삼스럽게 아직도 이 땅과 이 나라가 전쟁의 포화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감사히 여겨지는 날들에 다시 한 번 태백산맥을 꺼내 든다. 60년이 훌쩍 넘은 날들의 일은 오늘날과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