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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05 / 폭행] 폭력의 굴레 속에서 by 에일레스

 

내가 학교 다니던 때에는, 체벌이란 말 그대로 '산소같은 것'이었다. 늘 존재했다는 말이다. 나는 중상위권 성적에 딱히 튀는 행동을 하거나 사고를 치지도 않는, 말하자면 모범생에 가까운 편이었는데도 자잘한 이유로 체벌을 당했다. 맞는 이유는 다양했다. 아침 8시 땡 치는 시간에 학교에 도착하지 못해서, 성적이 떨어져서, 선생님이 임의로 지정해놓은 목표 점수에 도달하지 못해서, 야자 시간에 딴짓하다가 걸려서.. 방법도 다양했다. 손바닥 맞는 것은 기본이고, 엎드려 뻗친 채로 엉덩이를 맞기도 하고, 책상 위에 무릎꿇고 앉은 채로 허벅지나 발바닥을 맞기도 했다. 팔 안쪽의 약한 살을 꼬집히기도 하고, 볼도 꼬집히고..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훈육'의 방법이라고 여겼다.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잘못을 했기 때문에 맞는 거라고. 가끔 좀 심하다 싶은 경우도 있었는데,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얘기하면 부모님도 그렇게 말했다.

"잘못했으니까 혼나는거지!"

성적표에 있는 학부모 의견란에 '더욱 지도편달 바랍니다' 라고 쓰던 시절이었다.

 

 

 

 

4등 (4th Place, 2015)

관람객 8.72(116)
기자·평론가 7.07(11) 평점주기
개요 드라마 2016.04.13 개봉 116분 한국 15세 관람가
감독 정지우
내용 1등만 기억하는 잔인한 세상,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1998년, 아시안게임을 2주 앞둔 시기. 전도유망한 수영 국가대표 선수 광수는 무단으로 태릉 선수촌을 이탈했다가 일주일만에 돌아간다. 화가 잔뜩 난 국가대표팀 감독은 광수를 혹독하게 야단친다. 감독은 마대 자루로 광수를 때리기 시작하고, 맞던 광수는 참지 못하고 선수촌을 뛰쳐나온다. 그렇게 광수의 아시안 게임 출전은 끝이 난다.

 

 

 

 

 

16년 후.

초등학생 수영 선수인 준호는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4등>이다.) 준호가 수영 선수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준호 엄마는 그것 때문에 미칠 노릇이다. 준호 엄마는 수소문 끝에 성적을 올려준다는 코치를 소개받는데, 그렇게 만난 코치가 바로, 광수였다.

 

 

 

 

처음엔 대충 때우려고 하던 광수는 준호에게서 가능성을 보고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광수의 교육 방식은 체벌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광수는 준호에게 말한다.

"쌤이 네가 미워서 때린거 아니거든. 네가 인마, 집중 안하고, 시키는대로 안하니까 답답해서 그러는거잖아."

 

 

 

 

준호는 집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동생에게 맞아서 멍든 등을 들킨다. 동생은 엄마에게 달려가 형이 등이 시뻘겋다고 얘기해주고, 엄마는 밤에 잠자는 준호의 등을 들추어보고 그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엄마는 새벽에 수영장으로 준호를 데려다줄 뿐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훈련방식에 엄마는 관여하지 말아달라는 코치 광수의 요청이 있기도 했지만, 엄마는 그런 식으로라도 준호가 성적을 올리길 바랐던 것이다.

나중에 준호가 맞는 것을 알게 된 준호 아빠에게도, 준호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난 솔직히, 준호 맞는거보다 4등하는게 더 무서워.."

 

 

 

이 영화는 폭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행해지는가를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초반, 광수라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좀 맞아야 정신차릴 것 같은' 캐릭터다. 고등학생인데 술도 마시고, 수영 실력에 자만해서 다소 '싸가지'도 없다. 광수가 선수촌에 입소하지 않고 무단 이탈한 이유는 동네 아저씨들과 노름에 빠져있느라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화를 내고 체벌을 가하는 감독에게 욕설과 함께 화를 내며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선수촌을 뛰쳐 나온다.

그런데 16년 후의 광수는, 자신이 맞았던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준호를 때린 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옛날 생각하면 감독 선생님들한테 젤 아쉬운게 뭔지 아나? 시합 끝나고, 선배들은 빠다 맞고 대가리 박고 있는데, 나는 사무실에서 떡볶이, 순대 이런거 시켜먹고 있었다. 기록 나오고 메달 땄으니까 나는 안건드렸지. 아~ 그때 좀.. 내가 기록을 내도 좀 때리고, 강하게 키웠으면, 내가 더 많이 성공했을거야."

광수의 기억 속에서, 폭력은 이미 정당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광수는 폭행당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어 준호를 때린다. 준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절함이 없기 때문에- 라는 이유를 대고서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서 이런 이유로 폭력이 발생한다. 실제로 준호가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이러한 폭행은 더욱 용인받을 수 있게 된다.

폭력은 대물림된다. 이번에는 준호가 동생인 기호를 자기가 맞았던 똑같은 방식으로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광수가 그랬듯이, 몇대 맞을래? 하고 물어가며.

 

 

 

맞아서 잘하게 되는 것.

실제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군대에서나 스포츠 쪽에서는 특히 맞아서 정신차려서 잘하게 된다-는 방식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그런 사고방식이 있어서 체벌이 정당화된 측면도 있다.  무섭고 잘 때리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은 좀 덜 무섭고 때리지 않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보다 평균 점수가 높게 나오기도 했다. 언젠가 어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사람은 말로 해도 알아들으니까 사람인데, 너네는 왜 말로 하면 알아듣지를 못하냐. 너네가 짐승이냐? 맞아야 알아듣게?"

저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이 난다. 저 말이 뭔가 엄청나게 듣기가 싫었다.

 

교육에는 많은 방법론들이 있다. 어떻게하면 학생들을 더 집중시키고,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많은 연구가 행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체벌이란 어쩌면 효과적인 하나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 옳은 방법은 아니다. 잘못했다고 맞아야 하는가? 그렇게 발생하는 폭력이 정당한가?

모두가 머릿속으로는 정답을 알고 있다.

다만 폭력이 너무나 체화가 되어서, 때때로 당연시여기게 될 뿐이다.

 

영화 속에서 준호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정말, 내가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어? 내가 1등만 하면 상관 없어?"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말없이 흐느껴운다.

그것이 대답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