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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06 / 전쟁] 운동전쟁 by 란테곰.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공놀이 전쟁이 다시 돌아왔다. 축구를 잘 하는 나라들과 속칭 "끕 차이"가 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끕" 이면 16강은 가야 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지배해왔던 그간의 전쟁에 비해 이번엔 아예 3패 확정이니, 시청 자체를 포기했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경기는 해 봐야 안다 라고 얘기를 했던 사람들도 더러 있긴 했으나 첫 경기를 보고 나서는 그런 말이 쏙 들어간 것이 대부분이었다.


두 경기를 마친 이후 우리는 경우의 수라는 징글징글한 녀석과의 재회를 피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이밀며 일말의 가능성이 있으니 행복 회로를 돌리자는 해설진들의 억지 섞인 희망은 사람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아시안 게임에 나가는 다른 스포츠에 대주자로 써서 군대 면제를 시켜주자는 얘기가 양쪽 스포츠 기사들에 댓글로 달리기 시작했다. 선수 한 명은 온몸으로 욕을 견뎌냈고, 선수 한 명은 경기를 보러 온 대통령의 위로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새롭게 등장한 선수 한 명이 큰 관심을 받았다는 점이 유일한 좋은 점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는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렸다. 징크스 유지 (전 월드컵 우승팀은 다음 월드컵에서 조별 탈락) 를 위한 신의 가호라고 하기엔 "끕 차이"가 엄청났다는 점, 경우의 수를 획득하기 위한 조건 중 자력이 필요한 부분을 성공해냈다 (독일 상대로 한국이 2-0 승리 +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겨주기) 는 점, 경기가 끝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선수들과 그들의 경기력에 호평을 했다는 점. 이 세 가지가 맞물려 국가대표는 어깨를 펴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계란 투척남이 나오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국대보다 그 사람을 욕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전쟁에서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라 생각한다.


우리 나라만이 아닌 전체적인 전쟁판을 들여다 보았을 적에, VAR이라는 신문물을 가져다 놓아봐야 결국 심판이 지배하는 전쟁공놀이라는 것이 제일 아쉬웠다. 누구네는 비디오 판독을 해주고 누구네는 안 해주네? 이 한 마디로 수많은 이슈가 생기고 수많은 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프랑스와 덴마크가 붙었던 경기는 7만명이 넘는 직관자들과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빅엿을 선사해주었다. (이번 월드컵을 보다가 잠든 유일한 경기였다) 피파에서 새롭게 만든 페어플레이 포인트를 노린 일본도 후반 미친 듯한 공돌리기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선 유일하게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욕을 먹든 야유를 듣든 윗 순위로 올라가는 것이 목적인 월드컵 다운 경기였다.


올 한 해는 유독 스포츠전쟁 이슈가 많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이 동시에 열리는 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금메달을 따서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포부를 가질 것이고, 그것과 연관된 매 경기마다 수많은 갑론을박이 있을 것이다. (이미 충분히 있기도 하다.) 결과에 따라 또 평일 낮에 일부러 공항까지 계란을 들고 찾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운동만 잘 해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까지 상대해야 한다면, 어떤 종목이든 국가대표에 뽑힌 선수의 삶은 정말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