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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09 / 온도] 다가올 겨울의 추위를 걱정하는 인간 1인이 쓰는 글 by 에일레스

 

지난 여름은 정말 끔찍하게 더웠다. 잠깐 길을 걷기만 해도 뜨거운 열기와 공기를 꽉 채운 습기가 온몸을 압박해서- 몸에 막 열이 올라 타버릴 것 같고 정말 숨 쉬는게 힘들게 느껴질 정도였다. 계속 에어컨 없이 사시던 나의 부모님도 지난 여름에 드디어 에어컨을 구입하셨다. 빨리 설치하려고 좀 비싸게 샀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에어컨을 발명했다는 윌리스 캐리어에 대한 찬사가 이루어졌다. 인류를 구한 과학자라며.. -ㅁ-

그런가하면, 지난 겨울은 어떤가. 그땐 또 정말 끔찍하게 추웠다.. 이렇게 추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추웠다. 나는 아주 얇은 옷부터 레이어드해서 일곱 겹씩 껴입고 다녔다. 그렇게 해도 추웠다!! 롱패딩이 그렇게 유행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건 멋이 아니라 그냥 생존템이었다. 난 계속 살까말까 하다가 못 샀지만, 올 겨울엔 사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한국은 한여름과 한겨울의 기온차가 대략 60도쯤 나는, 이상하고 이상한 기후를 가진 곳이 되었다. 이미 온대 기후라기 보다는 아열대 기후에 가까워졌다고 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꾸준히, 아주 조금씩 더 더워지고 추워져왔던 것 같다. 뉴스에서는 매년 '기상 관측 이래 최고'라는 말이 반복됐다.

원인은 사실 다들 알고 있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 때문이다. 산업화로 인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발생으로 지구의 평균 온도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흔히 말하는 '지구 온난화'다.

지구 온난화가 어떻게 폭염과 한파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면 좋다. (내가 과학에 약해서 그런거 맞다 -ㅅ-)

 

https://blog.naver.com/with_msip/221346979194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2807022&memberNo=16990721&vType=VERTICAL

 

 

 

그래서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는, 이러한 기후 변화의 끝에 생길 법한 모습을 다룬 영화다.

 

 

(스포일러 있음)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개요 SF, 액션, 드라마 2013.08.01 개봉 125분 한국 15세 관람가
감독 봉준호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차 환경문제가 대두되던 근 미래. 세계 정상들은 지구의 기온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인공 냉각제 CW-7을 대기 상층권에 살포하기로 의결한다. (영화 개봉이 2013년이었고, 그래서 작중에는 CW-7의 살포가 2014년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냉각제인 CW-7의 부작용으로 지구는 거대한 한파에 휘말려 사람은 물론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단 하나, 지구를 쉬지않고 달리는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만이 유일한 생존자들로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17년이 지났다.

 

열차는 윌포드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무한히 움직일 수 있는 엔진을 가지고 전 세계를 1년에 걸쳐 횡단하는 초호화 열차이다. 완전한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 안에서 17년 동안 먹고 자고 나름의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왔다.

기차의 맨 끝, 꼬리칸이 17년 후의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배경이다. 웹툰으로 나왔던 설국열차 프리퀄에 따르면, 꼬리칸은 달리는 기차에 기차칸을 추가로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탑승하게 된 사람들이다. 기차에서 원하지 않았던, 무임승차 인원들이다. 윌포드가 보낸 군인들에 의해 제압되었던 그들은 앞칸에서 보내주는 단백질 블록을 먹으며 빈민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윌포드는 때때로 군인들을 꼬리칸으로 보내 필요한 인력을 차출해가는데, 그 중에는 왠지 이유를 알수 없지만 5살도 안되는 어린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 대항하면 무자비한 폭행이 뒤따른다.

 

 

 

 

앞칸에서는 노란 옷을 입은 여자를 보내 타냐의 아들 티미와 앤드류의 아들 앤디를 데려가고, 거기에 항의하다가 타냐는 폭행을 당한다. 신발을 집어 던져 노란 옷의 여자에게 상처를 입힌 앤드류는 더 큰 징벌을 받는다. 팔 한쪽을 열차 밖으로 내밀게 하여 꽁꽁 얼게 만들고, 그렇게 얼어버린 팔을 망치로 부숴버리는 형벌이다. 가히 빙하기에만 가능한 방식의, 매우 잔혹한 형벌이라 하겠다.

 

이때 앞칸으로부터 총리인 메이슨이 와서 일장 연설을 한다. 모두에게는 정해진 자리가 있고, 너희는 꼬리칸이 있을 곳이니, 주제를 알고 자리를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꼬리칸 사람들의 앞칸에 대한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었고, 꼬리칸의 지도자인 커티스를 중심으로 하여 혁명이 시작된다.

 

혁명의 진행에 따라 꼬리칸 사람들이 점차 앞칸으로 전진해 가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앞칸으로 나아갈수록 꼬리칸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요소들을 만나게 된다. 물, 그 다음엔 불(횃불), 그리고 인질로 사로잡은 메이슨과 함께 과일나무와 식물들이 있는 칸을 지나고, 물고기가 사는 커다란 수조도 지난다. 봉준호 감독은 동물 칸도 계획했었으나 예산 때문에 미처 실행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다음으로 만나는 곳은 문명이 닿기 시작한다. 어린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 교실칸으로 시작하여, 의사가 진료를 하거나 재단사가 옷의 치수를 재는 곳들을 지나가고, 사람들이 여유롭게 차와 술을 마시는 곳을 지나면 여성들이 일렬로 앉아 머리를 하거나 페디 관리를 받고 있다. 그 다음엔 수영장과 사우나가 있고, 마침내 향락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차려입은 술 취한 사람들이 춤추는 곳과, 호화로운 모피를 입고 환각제에 절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지난다. 그리고 마침내, 열차의 맨 앞- 엔진실까지 온다.

 

커티스는 윌포드의 초대를 받아 엔진실로 들어간다. 널찍하고 조용한 엔진실에서 윌포드는 태연하게 스테이크를 구우며 커티스에게 자리를 권한다.

 

 

 

 

커티스는 윌포드로부터 자신이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듣게 된다. 꼬리칸의 정신적인 지주와 같은 인물이었던 길리엄이 사실은 윌포드와 몰래 연락하며 뜻을 통하는 인물이었던 것, 자신의 혁명 역시 그들의 계획하에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윌포드와 길리엄은 이 기차 내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인 혁명을 '연출'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인구를 조절하는 방법을 18년 동안(중간에 새해를 맞았기 때문에 17년에서 18년이 되었다) 지속해오는 중이었다. 그들의 계획보다도 커티스가 더 나아가기를 결정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물어 길리엄이 죽게 되었다는 것까지, 윌포드는 모두 말해준다. 충격을 받은 커티스에게 윌포드는 자신의 뒤를 이어 자신의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좀 더 충격적인 부분은 이 뒤에 나온다. 앞서 노란 옷을 입은 여자가 데려갔던 티미와 앤디의 모습이 확인된 것이다.

 

 

 

 

티미는 어린아이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은 열차 바닥 속에 들어가 내부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티미를 구하기 위해 커티스가 팔을 부품 사이로 끼워넣어 열차의 움직임을 중단시키자, 이번에는 앤디가 나타나서 수동 조작을 위해 열린 열차의 내부로 들어가버린다.

 

 

 

 

 

이 모습에 경악한 커티스에게 윌포드는 태연하게 설명한다. 엔진은 영원하지만, 부품 중에서는 멸종(사실 부품에 대해서는 '멸종'보다는 '단종'이라는 단어를 쓰는게 맞다고 생각한다)되는 것이 있고, 그것을 꼬리칸에서 데려온 아이들로 대체했다고 말이다. 커티스는 몰랐지만, 애초부터 윌포드에게 있어 꼬리칸의 존재 이유는 그것이었다. 부품으로서의 인적 자원의 공급.

 

이 영화에서 윌포드와 그의 엔진, 열차에 대한 마인드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애초에 지구 온난화를 가져온 것은 인간이다. 그리고 CW-7이라는 냉각제를 발명하고 그것을 사용해버려서 지구를 멸망시켜 버린 것 역시 인간이다. 인간은 자연을 망가뜨리고 생태계를 파괴했다. 그런데 그 인간들이 기어이 살아남아서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열차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열차는 생존의 마지막 수단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넓게 보면 이 열차는 또 하나의 '자연에 순응하지 않은' 인간의 발명품인 것이다.

윌포드는 열차 내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가 해온 일을 당연하다는 듯 늘어놓는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들을 죽이는 그 방식이 결코 자연스러운, 옳은 방식은 아니라는 것 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게다가 생명이 다해가는 기계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인간을 그 부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다.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멸종해야 했다. 그들이 행한 일의 결과에 따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일면 너무 과한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인간이 굳이 살아남기 위해 너무나 '비'자연스러운 일들을 행하는 것이 다 맞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우주의 한 부분이고 지구의 일부일 뿐, 결코 지배자가 아니다. 자연이 멸망의 바닥을 칠 때 인간 역시 그 순리에 따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더구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이 인간이라면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크로놀로 만든 폭탄으로 인해 기차가 폭발하고 눈사태가 일어나면서 기차는 탈선하여 떨어진다. 살아남은 것은 동양인 소녀인 요나, 그리고 커티스가 구해냈던 흑인 아이 티미, 둘 뿐이다. 그리고 둘은 기차 밖으로 나와 정처없이 걷기 시작하는데, 그때 멀찍이서 눈 덮인 산을 오르고 있는 북극곰을 본다.

영화 앞부분에서 요나의 아버지인 남궁민수에 의해 잠깐 언급되는데, 기차가 달리고 있던 10여년의 세월 동안 자연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어떤 생명도 살아남을 수 없었던 빙하기의 강추위가 서서히 걷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북극곰과 같은 생명체가 등장할 정도의 상태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과연 어린 두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사실 이 영화의 결말을 '결국 인류는 멸망했다'로 해석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기억에 따르면 원래 티미가 성장해서 하는 나레이션을 넣으려고 했다고 한다. 영화 자체적으로는 둘을 살려놓고 제 2의 인류 탄생의 기원으로 묘사한 듯..)

 

 

 

지구 온난화의 해결을 위해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고, 대중들에게도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 보호를 위한 이런저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잘은 몰라도 기술적으로 좀 더 커다란 변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기술적 변혁이 생기기 전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 인간들 각자가 좀 더 지구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빌려쓰는 지구-라고 하지 않는가. 깨끗하게 돌려줘야겠지..

 

바야흐로 가을인데도, 아직 한낮엔 햇빛이 뜨겁고 조금 덥다. 그리고 사람들은 벌써부터 닥쳐올 겨울 걱정을 하고 있다..

올 겨울은 좀 덜 추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