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01201 / 관계] 길들인다는 건,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거야. by 김교주

hanaholic 2012. 1. 30. 10:26
여우 한 마리, 소년 하나가 사막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소년에게 인사를 건넨, 예쁘게 생긴 여우가 말했다.

"지금 나한테 너는 수백 수천 명의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한 아이일 뿐이야.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은 거야. 그리고 네 입장에선, 너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지. (중략)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거야. (후략)" 

이것은 길들인다는 말이,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낯설어하는 소년을 위한 여우의 따뜻한 설명이다. 
소년을 이해시킨 여우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덧붙인다.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





이것은 어린 왕자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장면, 어린 왕자의 여우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이 뒤에 이어지는,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하겠지' 운운의 파트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 장면, 그러니까 여우가 어린 왕자를 만나 길들임과 관계 맺음에 대한 이야기를 길고 충실하게 나누는 곳은 워낙 유명해서 굳이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다.


어린왕자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생텍쥐페리 (문학동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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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라는 작품의 수많은 함의 가운데 사랑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굵어져서 이 책을 다시 접했을 때, 나는 여우의 최초 설명에 격하게 분개했다. 길들임은 곧 관계 맺음이라니. 그렇지 않아.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러면 난 방금 전 담배를 사들고 온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길들였단 말이냐! 
하지만, 이어지는 여우의 설명이 내 마음을 다독이고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만들었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우는 최고의 현자이자 (어린 왕자에게는) 최선의 스승이었으리라.

굳이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좋다. 괜히 어렵게 인생을 들이대지 않아도 좋다. 아주 가볍게, 편하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지금  옆에 앉아 있는 내 동료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둘도 없을 이현주 양이고, 이 블로그에 함께  글을 쓰고 있는 두 사람은 역시 다른 누가 완벽히 같은 모습으로 대체할 수 없을 군신이고 곰이지 않은가 말이다. 여우가 말해주는 진실은 이처럼 아주 간단하다. 똑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완전히 다른 개체들, 비슷한 누군가가 대체할 수 있기는 할지언정 정확히 같은, 누군가는 아니라는 것. 요컨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 서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길들여가는 존재라는 것. 마치 민들레 홀씨가 각각의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지구라는 낯선 별에 찾아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일뿐이라고 생각하던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이렇게 친구가 되고, 스승이 되고, 연인이 되어준다. 이 고운 두 객체(!?)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관계 맺음의 아름다움을 본다. 설령 그것이 이별로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회자정리라고 하지 않던가.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니 그 끝을 두려워해서 시작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 일이다. 관계 맺음의, 길들임의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을 어린 왕자와 여우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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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 해 동안의 내 테마가 박완서 였다면 2012년에는 어린 왕자가 될 전망. ....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망. 최선을 다해 보리다.

에블바뤼 해삐뉴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