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01012 / 연극] 당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얼굴 by 에일레스

에일레스. 2010. 12. 19. 02:07

※ 본 글은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어느 날엔가. 퇴근하는 길에 종로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이 평범해보이는 사람들 중에 '보이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뉴스를 보면 연일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사회면을 장식합니다.
어제는 유학까지 갔다온 멀쩡한 청년이 길에서 모르는 여자에게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지하철에서 잠든 젊은 여자를 성추행한 40대 아저씨가 사람들의 공분을 산 적도 있습니다. 방송에서 한없이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였던 한 남성 연기자는 마약을 밀반입해서 상습 복용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몇해 전에는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한 여성 연기자가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헀습니다.

중요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저 사람들이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착한 아들로, 좋은 아빠로, 성실한 직장인으로, 유쾌한 친구로, 다정한 선배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알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누구나 사람들 앞에서 '연극'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사회라는 곳에 적응을 해야 하니까, 싫어도 지켜야 하는 도덕이나 윤리, 예절 같은 것을 따르게 되어 있으니까. 내면에 감춰진 어두운 면은 억누르고 말입니다. 그것이 자기도 모르게 (혹은 인지한 상태로) 분출되면 위와 같은 사건이 발생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이라는 주제를 제안하고, 인간의 양면성이나 어두운 면에 대해 생각하면서 떠오른 영화가 1996년작, <프라이멀 피어> 입니다.


프라이멀 피어
감독 그레고리 호블릿 (1996 / 미국)
출연 리처드 기어,에드워드 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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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배경은 시카고. 존경받는 카톨릭 주교인 러쉬먼이 끔찍하게 난도질되어 살해당합니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도망쳤다가 피투성이로 발견된 19세의 소년 애런 스탬플러(에드워드 노튼). TV에서 소년을 본 변호사 마틴 베일(리처드 기어)은 그를 변호하기로 결심하고 애런을 찾아갑니다.



순진해보이는 얼굴을 한 소년은 살인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시골 출신에, 말까지 더듬고, 성격도 어리숙합니다. 애런은 시종 자신은 결백하며 어린 시절 학대당한 후유증인 기억상실을 앓고 있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마틴은 제 3의 인물이 있었음을 주장하면서 애런의 정신감정을 의뢰합니다. 그러나 주교가 애런과 그의 여자친구 린다, 그리고 애런의 친구 알렉스를 데리고 직접 촬영한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가 발견되면서 애런의 살해 동기가 입증되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보이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첫번째 사례가 러쉬먼 주교입니다. 카톨릭 주교로, 지역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던 러쉬먼 주교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구제해주는'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 그 아이들로 하여금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하고 그것을 직접 비디오로 찍기까지 하는 인물이었던 겁니다. 또한, 그는 지역의 빈민들이 사는 땅을 사들이고 빈민들로 하여금 살 곳을 잃게 하는 탐욕스러운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죽은 주교의 가슴에는 칼로 'B32-156'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은 교회 지하의 서가에 있는 나다니엘 호손의 책 [주홍글씨]의 156 페이지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페이지에는 특정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어떤 인간도 진실된 모습을 들키지 않고 두 개의 가면을 쓸 수는 없다'

마틴은 애런을 찾아가 비디오에 대해 다그치기 시작합니다. 궁지에 몰린 애런은 두통을 호소하고, 그 순간, 애런의 또 다른 자아인 '로이'가 등장합니다.



거칠고 폭력적인 로이는 애런과 정반대의 성격의 소유자로, 주교를 죽인 것은 애런이 아닌 자신이라고 태연하게 자백합니다. 다시 정신을 차린 애런은 로이가 됐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틴은 이것을 이용해 애런이 정신이상임을 증명할 방법을 찾습니다. 법정에서 마틴은 애런을 증인석에 세우고, 검사는 애런을 사정없이 몰아붙입니다. 마틴의 계획대로 로이의 성격이 튀어나오고, 로이가 검사를 공격하고 폭력을 가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결국 애런은 정신이상으로 인한 무죄로 판명되고, 사건은 마무리가 됩니다.

마틴은 애런의 감방으로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훈훈하고 흐뭇한 기분으로 감방에서 돌아나오는 순간,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 시작됩니다.



애런은 뒤돌아 나가는 마틴을 불러 세워 검사를 공격했던 것에 대한 사과를 전해달라고 합니다.



감방을 나가 발걸음을 옮기던 마틴은 뭔가를 깨닫습니다.



애런은 분명, 로이였던 순간에 대해 사과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애초부터 로이는 없었습니다. 아니, 애런이 없었던 겁니다. 애런이 보였던 말더듬이, 순진한 표정, 어리숙함 등은 사실 그가 꾸며낸 연극이었던 것입니다. 애런은 '애런'이라는 가상의 성격을 만들어 연기하고, 그의 기억상실을 연기했으며, 애런의 이중 인격인 것처럼 해서 로이를 연기하는 다층적인 연극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주교를 끔찍하게 살해한 잔혹한 인물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 마틴은 감방에서 나와 바람부는 거리로 걸어나갑니다. 회색톤의 거리 위에서 마틴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멈춰섭니다. 바람이 차갑게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갑니다.
그 장면 속의 리처드 기어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인물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한다면 누구나 저런 표정을 지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글 초반에 언급한, 평범한 듯 보였던 사람들의 지인들도 아마 뉴스를 접했을 때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요?

결국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연극'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누구나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다만 그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 하나 뿐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