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 / 우정] 친구들. by 에일레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다. 지난번 글(http://eseses.tistory.com/256)에서 얘기했던 D라는 친구와 화해한 이후였다.
D는 나와 절교 상태였던 기간 동안 자신의 친한 친구 무리가 이미 따로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그 중에 M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M은 나와 같은 반이었다.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는데 성격이 좀 특이했다. M과 친한 애들은 그 점을 좋아했다. 그런데 M과 친해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M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애하고만 친해졌고, 그애들한테만 엄청 잘했다. 관심없는 애하고는 그야말로 말도 섞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M의 관심 밖에 있는 애였다. 난 뭐 워낙 평범한 애였으니까 -ㅅ-
아무튼, 언젠가 D를 통해서 M이 나를 두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다지 좋은 말들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에 하나가, 이 글을 쓰려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M은 내가 '사람을 넓게는 사귀는데 깊게는 사귀지 않는거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저 말은 좀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그냥 평범한 여고생이었고, 같은 반 아이들과 두루 친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조금 더 친한 친구들이야 있었지만..
저 말은 내가 사람들과 피상적인 관계만 맺는다-는 걸로 들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때 나는 사람들과 사귀는 데에 서툴렀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평생 친구라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지금의 절친들은 대부분 20살 이후에 만난 친구들이다. 뭐 꼭 그 말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또 모르겠다. 그때 들은 말이 내 무의식에 깊게 남아 있어서, 조금 더 사람을 깊게 사귀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ㅎ
신세계 (New World,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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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출신의 경찰 이자성(이정재)은 강과장(최민식)의 계획에 의해 역시나 화교 출신인 조폭 정청(황정민)에게 접근하여 그의 수하가 된다. 둘은 여수 지역의 바닥을 구르던 시절부터 함께했고 지금은 골드문이라는, 겉보기로는 어엿한 기업이지만 사실은 조폭들에 의해 운영되는 회사의 이사 직함을 달고 있는 사이다.
이자성은 강과장에게 계속 조직의 정보를 날라주지만 늘 정체가 탄로날까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자성은 하루 빨리 임무를 그만두고 경찰로 복귀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강과장은 이자성이 계속해서 정보를 빼내오기를 요구한다. 정청은 자꾸 조직의 정보가 새어나가자 따로 조사를 하게 되고, 그러던 중에 이자성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정청은 이자성의 정체를 알고도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정청에게 있어 이자성은 '브라더'라고 부르던, 오랫동안 각별히 가까운 사이이던 것 때문이다.
라이벌 분파에게서 공격을 당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도, 정청은 이자성의 정체를 알고 있음을 넌지시 비추기만 한다. 그러면서 이자성에게 '네가 살기' 위해 '선택을 하라'고 충고한다.
영화 엔딩에 가서, 이자성과 정청이 지금과 같은 거물이 되기 전인 여수 바닥을 누비던 6년 전이 잠시 비춰진다. 아직 젊고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뿐이었던 둘은 나란히 칼을 들고 목적한 임무를 해치우러 간다. 그러고서 옷이 찢어지고 얼굴엔 피를 묻히고 같이 나와서 다음에 뭐 할지를 얘기한다.
큰 일도 작은 일도 함께 하던 추억. 그것이 이 둘을 끈끈하게 만들어 줬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장면이다.
나도 이제 나이가 좀 됐(...)다 보니, 주변 친구들과 만난 것도 대부분 꽤 오래 됐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망아지(!) 같던 시절들을 같이 보냈고, 그 기억들은 요즘도 가끔 소환되어 웃음을 주곤 한다. 서로의 까칠한 부분이나 예민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대체로 알고 있으며, 사실 그런 부분들도 비슷하게 맞기 때문에 더 가까워진 것도 있다. 우리들 사이에는 서로의 어렸던 모습과 흑역사, 좋았던 모습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촘촘이 박혀있다.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 강한 친근감을 만들기에 가장 필요한 요소가 그거인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고, 각자의 생활들은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대충 느껴진다. 지금의 이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이제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에겐 정말 깊게 사귀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