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 / 야망] 명사. 크게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희망. by 란테곰
최근, 남자가 그렇게 배포가 작아서 어디 쓰냐는 얘길 들었다. 넌 아직 매인 몸도 아니고 할 일도 많은데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 있느냐며. 조금 더 너를 위한 삶을 살아도 괜찮은 거 아니냐며. 내가 그렇게 주눅이 들어보였냐 되물으니 하이고 어깨가 움츠러들다 못해 쪼글쪼글하단다. 어깨 펴라고. 가슴도 펴고. 땅 보고 걷지 말고 앞을 보고 걸으라고. 첫눈이 온 날 예비군 훈련소 교정에서 오랜만에 만난 남자 두 사람이 할 얘깃거리는 아녔지만, 그래도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내준 형님이 고마웠다.
회사를 그만 두고, 퇴직금 지급 문제로 싸우고, 그 사이에 벌렸던 많은 일들을 정리하니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달 동안 집에서 밥을 축내면서 느꼈던 점은, 집구석에만 있으니 사람이 말 그대로 쪼그라든다는 것이었다. 할 게 없어도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보든 날씨를 느끼든 뭐라도 움직여야지, 할 게 없다고 집에만 있으면 결국 할 일이 있어도 집에서 나가기가 싫어지더라. 그래서 최근엔 약속도 잡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이렇게 저렇게 보내고는 있다. 그나마 아직 낮밤이 바뀌지 않은 것이 용하고 또 다행스럽다.
우여곡절을 거쳐 퇴직금도 들어왔고, 퇴직금을 담보 삼아 빌렸던 이웃 소액 결제도 해결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퇴직금을 알차게(?) 까먹는 일 뿐이다. 하지만 퇴직금이라 봐야 푼돈에 가까우니 과연 어찌 써야 좋을 것인가. 바닷바람 맡으며 회 한 접시를 마시고 와도 좋겠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워도 좋겠고, 혼자서 낯설고 외진 동네를 찾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며 설렁설렁 걸어도 좋겠다.
당장 며칠 후면 내야 할 공과금과 생계비는 모른 척 하고 움직이는 배포! 어쩌면 형님이 내 나름의 고민을 눈치 채고 그런 얘길 해줬나 싶었다 하하. 지금 내겐 그런 게 필요한 때인가 싶기도 하고. 때마침 감기가 제대로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는 동생이 몸을 추스르면- 짧은 일정이나마 떠나보련다.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날지는 나중에 정해도 상관없겠지.
막상 이렇게 마음을 딱 먹으니, 내 방 창문 뒤 벽에서 울고 있는 길고양이마저 내게 힘을 주는 느낌이다. 창가로 보이는 낙엽 달린 나무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에서도 신이 묻어난다. 진짜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인가부다. 야망이라 부르기엔 작디작은 꿈일지언정 일단 덤벼보면 집구석에서 느낄 수 없는 답이 나올 것이고, 그 답을 기준 삼아 살아가보기로 한다.
내가 어찌 살든, 약하다 욕하긴 없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