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닌 어떤 세상

[에일레스] 어디로 갔을까

에일레스. 2015. 8. 23. 23:10

내가 주택가에서 살게 된 것은, 내가 기억하는 한은, 지금 사는 이 동네가 처음이다. 아주 어렸을 때- 두돌 무렵에 주택가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당연히 나는 기억에 없다. 우리 집은 빌라였던 적이 한번 있었고, 그 외에는 쭉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지금 동네로 이사오기 전에 살던 아파트는 인천에서도 조금 외진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덕분에 동네가 정말 조용했다. 번화한 지역이 아니다보니 사람도 차도 불빛도 적었다. 방 안에서 불을 끄면 내 방 멀티탭이나 컴퓨터 전원버튼 쪽의 작은 불빛만 반짝 보일 뿐 아무 것도 안 보일 정도로 컴컴했고, 가끔 저 멀리서 아득하게 차 사고나는 소리가 들린 것 빼면(공항 가는 넓은 도로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새벽이면 자동차들이 폭주하다가 사고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말 조용했다.

밤에 숙면하기는 딱 좋은 동네였다.. 

 

사실 나는 잠 자는 것에 좀 예민한 편이다. 잘 때 불빛이 있어도 잘 못 자고, 소음이 있어도 잘 못 잔다. 그래서 이전에 살던 동네의 그 소음없는 깜깜함이 더 그립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동네는 교통이 매우 불편했고 가까운 곳에 편의 시설도 별로 없는 곳이라 살기가 그닥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러다 지금 동네로 이사온 것이 4년쯤 전인 것 같다.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나는 잠 드는 것에 큰 곤란을 겪었다.. 주택가라는 곳은 정말 시끄러운 곳이었던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온갖 물건을 팔거나 산다는 트럭들이 방송을 하며 돌아다녔고, (우리 집은 큰길가로부터 골목으로 들어와서 다른 쪽 골목들과 만나는 작은 사거리의 안쪽에 위치해 있는데, 이 사거리가 골목 치고는 조금 큰 편이라 트럭들은 으레 우리 집 근처에 차를 대놓고 방송을 해대곤 했다) 밤에도 사람들이 한껏 떠들면서 돌아다녔다. 게다가 웬 개 키우는 집들이 그리 많은지 새벽에도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깬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째서 이 집 개가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 개들이 연달아 다 짖는건지 이해못하는 밤이 계속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사오고 나서 서너달 쯤 지난 후에 발견되었다.

새벽 세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엄청 크게 소리지르는 것 때문에 잠이 깼다. 여자 목소리였고, 소리지르는 내용은 욕설이었으며, 정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가서 내다보니, 우리 집이 있는 그 사거리 앞쪽에서 어떤 아줌마가 서서 그러고 있었다. 누군가를 향해 욕을 퍼붓는 중이었다. 정말 무지무지 커다란 소리로. 너무 소리를 질러서 나중에는 목이 쉬어가는 것도 들릴 정도였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깨어나서 각자 창문 밖을 보며 그 아줌마를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어쩌나 고민을 했다. 결국, 차마 신고는 하지 못했다. 그냥 정신나간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 경찰에 신고해서 뭐 어쩌겠는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을. 이 동네 사람들은 그 아줌마가 그러는 것에 익숙했던 건지, 아무도 우리처럼 내다보는 것 같지 않았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은 자야했고, 나는 누워서 그 아줌마의 욕 하는 소리를 한참 듣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그 아줌마는 몇 달에 한번씩 나와서 존재감을 드러내주었다. 그 아줌마의 목소리에 깨어나면 정말 울고싶은 마음으로 억지로 자려고 노력하곤 했다. 한번은 그러다가 정말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경찰이 와서 그 아줌마를 데려가는 것을 창문 너머로 봤다고 한다.

 

나는 그 아줌마의 가족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생각했다. 설마 혼자 사는 사람은 아니겠지. 가족이 누군가는 있을 것 같은데, 저렇게 동네에서 '유명인사'가 되는 가족을 둔 기분은 어떨까. 어떻게 관리를 할 방법이 없어서 저렇게 하는 거겠지. 저런 사람이 가족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까운 이웃들은 저 아줌마를 알텐데 그 가족들이 이웃들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나로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의 범위 바깥에 있었다.

 

그 아줌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러고 또 몇달 후였다.

주말이었고, 낮시간이었다. 오후 두시쯤 됐던 것 같다.

다시 그 아줌마가 예의 그 자리에 서서,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낮이었기 때문에 길에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사거리를 기준으로 우리집에서 큰길 쪽 건너편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 앞에서는 늘 그렇듯 평상을 펼쳐놓고 동네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우리집 맞은편 쪽에 있는 작은 미용실 아줌마도 그 무리들 옆에 서서 같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낮에 그 아줌마가 그러고 있는건 처음 보는 거라 창문에 붙어서 몰래 내다보는 중이었다.

한참을 소리지르던 그 아줌마는 목이 아팠는지 갑자기 소리치는 것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조금 켁켁하고 기침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미용실 아줌마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물 한잔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그 아줌마를 불렀다.

"아줌마, 물 한잔 마셔요. 일루 와요."

그 아줌마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이내 미용실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미용실 아줌마가 주는 물을 받아서 꿀꺽꿀꺽 마셨다. 미용실 아줌마는 덥지 않냐며 잠깐 미용실 안에 앉아있다 가라고 권했고, 그 아줌마는 순순히 미용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 아줌마가 미용실에 있는 소파에 앉는 모습까지 얼핏 보였다.

뭔가 신기했다. 그 아줌마가 그렇게 순순히, 보통 사람처럼 그런다는 것이.

 

그날 이후에는 그 아줌마를 보지 못했다.

그 아줌마가 안 보인다는 것도 사실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어느날 동생이 "그러고보니 요즘에 그 아줌마 안보이네?" 하고 말을 꺼냈을 때에야, 아 그러네- 하고 생각이 났다.

희한하게도, 그 아줌마가 골목 사거리에 서서 소리지르던 모습보다도, 조용히 미용실 아줌마가 건네주던 물 마시던 모습이 더 강하게 기억이 난다.

 

어디로 갔을까, 그 아줌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