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 / 축제] 4월 어느 날, 그 하루 슬프던 날. by 김교주
2015년 4월 15일, 광화문에서 약속이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난하는 다큐멘터리를 독립극장에서 보았고, 감독의 무대인사를 함께 했다. 알게 모르게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는 다큐였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데도 정치적인. 교보문고 앞에 조촐히 차려진 세월호 희생자들의 분향소에 들러 헌화를 하고 나오는 길에 밤하늘이 참 맑았다.
4월 16일, 진짜 1주기를 맞아 가장 친하게 지내는 동기와 다시 광화문을 찾았다. 낮에 내린 비로 쌀쌀해진 날씨 속에 두 시간 반을 기다려 헌화를 하면서 우리는 둘 다 조금 울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거리로 나섰을 때, 닭장차들이 이미 종로 거리를 물샐틈 없이 막기 시작했고, 광교에서 시청 쪽으로는 한 떼의 의경 무리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헬멧과 방패를 들고 발을 맞추어 뛰다시피해서 달려오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동기를 지하철역으로 끌어 내리며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무서웠고, 두려웠으며, 그 예감은 그날 저녁 현실로 나타났다.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난무하는 광화문을 인터넷 방송으로 보면서, 나는 내 비겁함이 부끄러웠다.
세월호 사건을 접하면서 삼풍을 떠올리곤 했다.
부의 상징이었고, 그곳의 랜드마크였으며, 누군가의 직장이기도 했던 곳. 관련 자료들을 찾아내 읽고, 보고, 한숨을 쉬고 울고 하다가 내가 과연 이 나라에서 무사히 살다가 제명에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분명,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날 것이고, 만일 그때도 내가 운이 좋아서 그 사고를 비껴갈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인 것이고, 또 만일 그때는 내가 사고의 피해자가 된다면... 국가는 나를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그리고 보고 있는 것처럼.
책이 아니라 웹툰으로 이 작품을 먼저 만났다. 웹툰이 나쁘지 않아서 원작을 찾아볼 생각을 했지만 소설은 기대했던 것만큼 문학적 가치가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뼈에 사무치게 아프고 슬펐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소설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삼풍의 피해자 가운데에는 그런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쓰여진 책을 단숨에 읽어내고 얼마쯤 허탈하고 조금은 아팠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 저자
-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지음
- 출판사
- 창비 | 2015-01-16 출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책소개
-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학생들은 3박 4일의 ...
비슷한 시기에 이 책을 같이 읽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한쪽이 팩션(fact+fiction)이라면 한쪽은 너무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이라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책읽기를 잠시 쉬어야 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건조한 분석을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말기 암과 싸우며 내가 간 뒤 남겨질 아이들을 걱정하던 어머니가 자식을 잃은 이야기, 가고 싶지 않다던 아이를 달래 보낸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는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고여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에 이야기들은 무겁고, 비참했다.
4월의 주제는 축제였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책들을 골랐다. 그건 사실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삼풍>의 도입에는, 마땅한 지휘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몰려드는 각종 중장비와 방송장비들, 앰뷸런스 등을 바라보며 "아, 저기에서 뭔가 축제가 벌어지고 있나봐."라고 말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사고가 일어난 건 오후 5시를 넘겨서였고, 그 날 그곳의 야경은 먼발치에서 보기에 불야성을 이루는 휘황찬란한 도심의 그것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 책의 처음 제목은 <삼풍, 축제의 밤> 이었다. 잔인하면서도 서러운 반어법의로의 축제였던 셈이다.
지금도 팽목항에는 마치 축제날의 만국기처럼 노란 리본들이 물결친다.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도, 겨우 시신으로 돌아온 희생자들도, 그리고 살아서 돌아왔으나 죄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지는 않을 리본들이다. 그러나 잊지 않기 위해 나부껴야 할 리본들이기도 하다.
기쁜 죽음이 어디 있으랴. 허나 모든 죽음은 순리대로 이루어져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슬프지만은 않은 감사한 추억과 따뜻한 기억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작품 <축제>에서 보여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