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01412 / 파티] 생일 파티.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잔치나 모임. by 란테곰

란테곰 2014. 12. 28. 14:13

여느 날과 같이 알람에 맞춰 눈을 떴다. 주섬주섬 일어나 씻고선 옷을 갈아입고 셔틀 버스를 타러 나섰다. . 생각했던 것보다 꽤 추웠다. 일하는 동안엔 반팔 위에 작업복만 입고 있어도 괜찮은데 출퇴근은 그렇질 않으니 옷을 어찌 입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버스를 탔다. 생일이랍시고 혹시 동생이 또 이거저거 차린다고 혼자 바쁘고 난리치진 않길 바랐다. 예전에 오빠 생일 한 번 챙겨준답시고 잡채에 뭐에 아주 한 상 부러지게 차렸는데 이후 이틀을 앓아누웠던 것이 떠올라서였다.


오전엔 종로에서 뺨을 맞고 온 윗사람이 한강에서 화풀이를 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부품이 없다고 구매과에 얘길 했는데도 부품이 오질 않아 내 일을 못하고 다른 일을 돕고 있었는데 그게 왜 내 탓인가.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챘는지 바로 나한테 얘길 하질 않았잖아 라는 윗사람의 이야기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만드는 제품 수주가 없어 만들어봐야 재고라는 걸 나도 알고 그도 알기에 재촉할 필요가 전혀 없지만, 그에겐 까이고 온 상황에서 내리 까임을 전해줄 나라는 아랫사람이 있었고 나에겐 그런 사람이 없다는 차이가 좀 고까웠다. 그래도 뭐, 이것도 생일 선물이라면 선물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세상에 국이 미역국이다. 국을 받으면서 영양사 분에게 하이고 생일을 회사에서 다 챙겨주네요, 고맙습니다.’ 라고 했더니 내 앞뒤에 섰던 많은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마침 오전에 화풀이를 했던 윗사람은 바로 내 맞은편에서 국을 받고 있었는데, 내 얘길 듣고 특히 놀란 듯 했다. 생일이면 얘길 하지 그러냐면서 저녁에 술 한 잔 하자며 부랴부랴 사람을 모으려 들기에, 생일 축하한다는 딱 한 사람의 이야기 빼곤 오전 내내 조용했던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죄송한데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와 윗사람 모두의 얼굴에 ...’ 이라는 세 글자가 수놓아졌다.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기 직전, 근처에 사는 동생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연락을 했다. 평일날 술 마시자면 그렇게 빼더니 웬일이냐며 이죽대는 동생에게 적당한 핑계로 눙치고 만나기로 했다. 구천 구백 원을 내면 세 시간동안 소주와 안주가 무한리필인 술집에 둘이 마주보고 앉아 안주를 시켜놓고선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내년부터 담뱃값이 오른다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동생에게 담뱃값이 오른다는 이야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담배를 못 끊겠다며 넉살을 부렸다. 한 병쯤 마셨을 즈음 마주앉은 동생에게 오늘 생일이란 얘길 했다가 생일날 이게 뭐하는 거냐고 웃음 섞인 타박을 받았다. 나도 웃어 넘겼다.

집에 돌아왔다. 동생이 잠을 자고 있었다. 씻고 뭐하고 하는데 시끄러웠는지 동생이 일어났다. 동생은 잠이 덜 깨서 눈을 비비면서도 저녁은 먹고 왔는지를 물었고, 난 생일이니까 당연히 얻어먹고 왔다고 얘길 했다. 거의 감겨있던 동생의 눈이 똥그래졌다. 깜빡 잊었다며 미안해하는 동생에게 괜찮다며 다독이고 제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물을 한 잔 마시면서 방금 그 표정 참 좋은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