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01410 / 열정] 윽지로라도. by 란테곰

란테곰 2014. 10. 31. 19:30

 

난 생산직에 근무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쉽게 풀어 얘기해보자면 '모양이 똑같지만 사이즈가 여러 가지인 건프라를 매일 윽지로 만들고 있다' 정도겠다. 처음에야 과정 자체가 너무 길어 갑갑하기도 했고, 어찌 어찌 만들고 테스트할 적에 동작이 잘 되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고, 중간에 부품을 하나 빼먹어 그간 만들었던 것들을 전부 역순으로 헤집는 일도 있긴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후로는 그저 윽지로, 윽지로 하고 있는 일일 뿐이다.

반년 쯤 지났을 무렵부터 매일 하는 똑같은 일을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근데 뭐 방법이 없더라. 업무 시작 벨이 울리면 들고 있던 핸드폰도 수거를 해가는 와중에 뭔가를 켜놓고 보거나 들으면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가끔씩 오늘은 진짜 열심히 해봐야지 하는 기분이 들면 꼭 어딘가의 부품이 하나둘씩 모자라서 손가락을 빨다가 결국 내 일은 못 하고 남의 일이나 돕고 있자니 의욕도 자연스레 스러져가고.

게다가 회사에서 진이 빠져서 돌아오니 집에서는 그저 쉬기 바쁜 생활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일에서 시작된 루즈함이 내 생활 전체에까지 이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잠들고, 깨어나면 다시 루즈함으로 점철된 일을 하고, 돌아와 뭐 별로 특별한 뭔가를 하는 것도 없이 씻고 컴퓨터나 좀 보다가 잠들고. 그렇게 영 재미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기만 할 뿐인데 가끔씩 달력을 보면 벌써 올해가 이렇게나 지나갔구나 싶어 아찔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게 내 일이고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하루하루라면 주제만이라도 기분을 내보자는 생각으로 열정이란 주제를 낸 것이었다. 열정이라는 주제를 주자 한 친구는 마치 조건반사처럼 개미가 김이 없대라고 했고, 다른 친구는 그걸 바로 캐치하지 못하는 나이가 된 것을 씁쓸해했다. 그리고 난, 사실 열정이라는 주제를 주면 당연히 혜은이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을 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OTUL

그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노래 가사를 훑어보도록 하자. 사랑을 하고 싶고, 받고 싶어서 울었단다. 만나서 차 마시는 그런 사랑이 아니란다. 전화로 얘기하는 그런 사랑도 아니란다. 웃으며 안녕하는 그런 사랑도 아니란다. 마치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은 네들이 하는 평범한 것과는 다르다고 외치는 모양새다. 아니나 다를까.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이고, 사랑 하나 때문에 목숨 거는 사랑이란다. 같이 있지 못 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그런 사랑이란다.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기까지 한다니 뭐 말이 사랑이지 병에 가까운 정도인가보다. 한 마디로 줄여보자면 좋아서 죽겠다정도지 싶으다.

음. 단순히 노래가사를 한 번 읽어봤을 뿐인데, 난 어느새 그런 기분마저도 잊고 산 지가 꽤 오래 되었고 그 점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재미를 위해서라는 불순한 이유로 연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다니 참 우습다 하하하. 뭐 꼭 굳이 연애를 노리지 않더라도 동호회 활동같은 것을 다시 시작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어제보단 조금 덜 지겨웠다! 의도가 어쨌든 이유가 무엇이든, 콩알만큼의 열정만으로도 하루가 바뀔 수 있구나 싶어 좀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