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 / 열정] 마왕, 미안해. by 김교주
사실, 야구란 무엇인가 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야구라는 거대한 게임 속에 감춰진 룰, 그 뒤에서 벌어지는 엔터테인먼트로의 야구를 이야기하면서 선수들의 열정을 말하고 싶었다. 야구 전문 기자였던 저자가 쓴 야구팬의 필독서라는 그 책을 읽던 와중에(솔직히 말하면 엘지가 넥센한테 역전 홈런을 맞던 플레이오프 1차전의 그 이닝을 보고 있다가) 신해철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TV에서, 라디오에서, 내가 접하는 모든 매체에서 그의 음악과 그의 말들이 물밀듯이 덮쳐왔더랬다. 나는 이번 한 주를 그렇게 보냈다. 신해철이라는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뭔가 책을 바꿔서, 그에게 조의를 표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안녕"을 통해 처음 만난 그는 음악의 스펙트럼에서 나와는 조금씩 멀어져 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노래방에서 "Here I stand 4 U"를 부르고 남자친구에게 걸려오는 전화에는 "그대에게"가 울리도록 설정해둔 그의 어줍잖은 팬이기 때문에. (여담이지만 일반적인 전화들은 "I was born to love you"로 울린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기분 탓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땅히 그의 음악적 열정에 대해 썰을 풀 수 있을 만한 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야구란 무엇인가 를 그대로 밀고 나가자니 책읽기를 끝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이 책을 골랐다.
운명이다
- 저자
- 노무현재단 (엮음), 유시민 (정리) 지음
- 출판사
- 돌베개 | 2010-04-26 출간
- 카테고리
- 정치/사회
- 책소개
- 인간 노무현, 인권운동가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의 꿈과 희망, ...
나는....
나는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도 그를 지지했던 적이 없다. 내게 노무현은 좋은 정치인이었지만 탁월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존경한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를 존중.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존중은 그가 보인 진지함과 열정적인 태도에서 비롯했다고 봐야 한다.
그가 갖고 있는 생각들에 일부 동의하고 가끔은 반기를 들었다. 정치 이야기를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므로 더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알듯이 마왕은 그를 좋아했다.
책 속의 인간 노무현은 소외된 이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비뚤어진 정치판과 권력 구조를 향해 냉철한 비판을 내리고 있다.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싸웠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열정이 있는 남자였다. 신해철이라는 사람이 왜 노무현이라는 남자를 그렇게 각별하게 생각했을지, 얼핏 교집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 교감이 일어날 수 있었을지를 알게 된달까.
....변호사일 때도, 정치인일 때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노무현 재단이 엮었고 유시민이 정리했으니 당연히 노무현에게 호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염두에 두고 읽기를.
Goodbye Mr. Trouble 은 마왕이 노짱 사후에 만든 곡이다. 그를 향한 마왕의 절절함이 담겨 있어서 처음 들었을 때도 가슴이 먹먹했는데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무작위재생으로 얹어 놓은 음악들 가운데 숨어 있던 이 곡이 재생되는 순간 내가 느낀 막막함과 좌절감을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마왕의 최근 몇 년 행보를 보며, 늙으니 양기가 입으로 쏠리나보다 하고 낄낄대던 나다. 그에게 미안해진다. 마지막까지 그의 훌륭하지는 못해도 다정한 팬이기는 했어야 하는데 그래주질 못했다.
마왕, 미안해. 잘가, 고마웠어요.
장닭이 다 됐을 것 같은 얄리랑 그렇게 좋아하던 노짱이랑.. 행복하게.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있으라고.
꼭.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