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01406 / 마감] 사실 매 달 글을 쓰는 데 있어 제일 어려운 것은 제목 짓기. by 란테곰

란테곰 2014. 6. 26. 21:29



, 사실 이 주제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팀블로그를 그만 두게 되거나 팀블로그가 없어지게 될 때- 마지막 주제로 써먹으려 내심 아껴두고 있던 주제였다. 그간 썼던 글들 중에서 이 글을 쓸 땐 정말 마감이 몇 시간 남지 않았을 때까지 단 한 문장도 쓰질 못해 변선이 타들어갔었고, 반면 이 글은 주제를 받고선 1주일도 되지 않아 초벌(?)글이 나와 3주간은 다듬는 것에만 쓸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등등. 매 번 돌아가며 내는 주제를 거치며 쌓아온 날들을 마무리 짓기엔 최고의 주제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하하하하하. 이런 주제는 나 외엔 아무도 내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녔나보다. 그렇다고 원래 내가 노리던 점을 살리고자 팀블로그를 그만 두자니 그야말로 멍충이 인증하는 꼴이고 허허허. 어쨌든 이 주제가 나왔으니 처음 의도대로 글을 써보기로 한다. 내가 정리라는 주제를 내어놓고서 엄한 곳에서 주제를 살리는 꼴이 되지만, 그 점은 이해를 해 주시라. 마무리를 지을 적에 낼 주제는 조만간 또 찾아 쟁여놓기로 한다.

 

일단은 잘 써진 글들을 얘기하는 걸로 시작해 보자. 못 쓴 글들은 너무 많아서... 흐하하. 일단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쉽게 정해 술술 썼고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으며 반응들도 괜찮았던 글들이 다행히 몇 개 있었다. 그렇다. 있었다. 한 개도 없진 않았다. 참말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주제를 기준으로 해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추려보자면 2010년엔 sex와 가을, 2011년엔 공포와 첫사랑, 그리고 진실, 2012년엔 고립, 2013년엔 장난감, 올해엔 스토킹 정도가 되겠다. 결과를 놓고 보니 햇수가 늘어갈수록 그나마 괜찮게 느껴지는 글의 개수가 줄어드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이는 일상이라는 소주제에서 내가 뽑아낼 수 있는 과거 팔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과 일맥상통하겠다. OTUL 물론 내가 그간 써온 이야기 중 100% 있었던 일만을 쓴 경우가 거의 없지만 아예 전부 지어낸 이야기 또한 없었던 것도 사실인지라- 농담濃淡의 차이만 있을 뿐 일정 부분은 내가 겪은 일을 기반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결국 주제에 어울릴법한 경험담이 없으면 글이 매우 조악해지고, 반면 주제와 내 경험이 딱 맞아 떨어지면 그럭저럭 읽어줄 법한 글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저 글들은 사실 다른 공통점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에 굉장히 빨리 써놓고서 나중에 정리를 할 적에 진짜 등골이 빠질 뻔 했다는 점에 있다. 당시엔 컴퓨터를 사용하는 직장에 있거나 집에서 놀고 있을 때였기에 지금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난 일단 글을 생각나는 대로 주루루룩 써놓고서 문장 단위로 복붙해 문단을 만들고 글의 흐름을 정리하는- 이른바 글을 퍼즐처럼 쌓아올리는 습관이 있는데, 글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같은 문단이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 경우 과연 이 문장은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내 의도를 더욱 여실히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데, 여기도 괜찮고 저기도 괜찮고... 대체 어디 놔야 좋을까를 고민하다보면 시간이 훅훅 지나가버린다. 그렇다고 급한 마음에 계속 만지작거리다보면 처음에 썼던 글은 온데간데없고 문단들만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이른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기도 하기에,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싶으면 일단 집중을 다른 쪽으로 돌려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 된다. 결국 한 문장 옮겨보다 막히면 한 시간 보내고- 한 문단 옮겨보다 막히면 한 시간 보내고- 의 무한 반복인 것이다.

게다가 나에겐 똥고집도 있다. 아예 주제에 대해 접근 자체를 다르게 하는 경우 외엔 처음에 쓴 글을 뒤집어엎고 새로 쓰지는 않는 똥고집이. 그러다보니 이미 난리가 난 문장들일지라도 어떻게든 퍼즐 맞추듯 조립하고자 애를 쓴다. 정 답이 나오지 않으면 윤활제가 되어줄 문장을 써서 중간 중간 끼어주는 한이 있을지언정 일단 뽑아낸 글을 쉽게 뒤집지는 않는다.

이 문제점과 똥고집의 콜라보가 안겨주는 멘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저 글들은, 모두 이른 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한 번씩은 갔다 온 글들이다. 글을 쓰기 시작해 대부분의 내용을 채운 것은 무려 마감 3주 전인데 저 글들을 올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오래 걸린 경우도 있어 마감의 무게감과는 다른 변선의 쫄깃함의 깊이가 참으로 한 길 사람 속과 같아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던 경우도 있고, 무려 마감 당일 퇴근 후에 앉아 쓰기 시작한 글이 다행히 쭉쭉 뽑아져 나와 겨우 마무리를 지은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버텨가며 꾸려온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로 정리할 수 있겠다.


매 달 말일에 마감을 지어야 한다는 똑같은 상황으로 매 달 시작하지만 매 달 다른 이유를 통해마감에 쫓긴다는 같은 문제점에 봉착한다는 것은 참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일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우리는, 아니 나는 현재 팀블로그의 필진 셋 중에서 내 필력이 제일 모자라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기에 참말로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글들만 쓰고 있음에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또 어떻게든 마감을 지킨 날들이 쌓여가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생각하고 있다.

부디 앞으로도 이 쫄림을, 이 부러움을, 이 대단하다 생각하는 것 등등을 느낄 수 있는 날들이 오래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이 문장엔 내 마음은 이러니 앞으로 암만 글이 그지깽깽이 같더라도 쫓아내지만 말아주시라 라는 일종의 아부가 섞였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