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 / 기생] 여자의 인생 by 에일레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매춘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인류의 여성 차별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태초에, 문명이 발생하기 전에, 수렵과 사냥이 주된 생존 방식이던 시절부터, 남성에 비해 몸이 약하고 생존 능력이 부족한 여성은 상대적으로 약자였을 것이고, 약육강식이 당연시되던 시절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런 종류였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기생'이라는 직업도 그렇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어렵던 그 긴긴 시절, 신분이 낮은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을 것이고, 노비가 되거나, 그 중 용모가 뛰어난 여자들 또는 재주를 갖춘 여자들이 기생이 되었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문학이나 음악 쪽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거나 한 기생들이 많았다고 하니 말이다. 잘 알려진 황진이도 그렇고..
기생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소재를 뭘로 삼을까 꽤 오래 생각했는데, 아름답고 재주있지만 스스로의 환경을 극복하지 못했던 여자-쪽으로 테마를 잡다가 이 영화가 떠올랐다.
물랑 루즈 (2014) 
Moulin Rouge





- 감독
- 바즈 루어만
- 출연
-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존 레귀자모, 짐 브로드벤트, 리차드 록스버그
- 정보
- 로맨스/멜로, 뮤지컬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 130 분 | 2014-04-17
호주 출신의 바즈 루어만은 기존의 규정과는 다른 자신만의 춤을 추는 댄서의 이야기인 <댄싱 히어로>라는 영화로 주목을 받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전세계 소녀들의 우상으로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흥행감독이 된 후, 그전 영화들에서 보여준 영상미와 음악 사용 능력을 총집합시켜 폭발하는 것과 같은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그 영화가 바로 이 <물랑 루즈>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 자리잡은, 화려한 카바레 '물랑 루즈'이다. 아름다운 여인들과 춤과 음악이 가득한, 그리고 그것들을 즐기며 돈을 뿌려대는 남자 손님들이 가득한 곳, 그 한복판에 뛰어난 가수이자 고급 창녀인 샤틴이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 온 보헤미안 시인 크리스티안이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샤틴의 첫 등장은 아름답고 또 인상적이다. 숱한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천장에서부터 그네를 타고 눈부신 그녀가 내려온다. 남자들은 제각기 돈다발, 보석 목걸이 등을 들고 흔들어댄다. 그리고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진짜 무대'에서 공연하는 '진짜 배우'기 되는 것.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일단 공작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공작이 물랑루즈에 투자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 그녀의 우선적인 목적인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크리스티안을 공작과 착각한 그녀가 찾아가 만나게 되고, 그의 순수함에 사랑에 빠지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그런 스토리라고 간략하게 말할 수 있겠다.
샤틴의 경우에는 미모와 재능을 갖추고 있었고 사랑하는 남자까지도 갖고 있었으나 그녀의 환경이 일차적으로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된다. 이 러브 스토리가 비극으로 가기까지는 물론 그 외에도 다른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그나마 샤틴은 주인공이기 때문에 부각이 되는 것이지만, 그녀 말고도 물랑루즈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다. 그녀처럼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아니- 샤틴처럼 메인 스타가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어쩌면 샤틴처럼 배우가 되기를 꿈꿨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사랑조차도 할 수 없는, 이름없는 여자들. 황진이처럼 잘 알려진 기생 말고도 숱한 꿈과 사랑을 마음에 품고 살았을 그 수많은 기생들처럼.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들 한다. 여성의 삶도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재능있는 여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고, 사회생활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불공평한 가사 노동 분배라던지, 여성 희생적인 구조의 가정 문제라던지.. 성범죄 혹은 성매매 같은.. 이런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남아있지만 말이다.
이런 것들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안 되겠지, 라고 생각한다.
씁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