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 / 봄] 봄의 축제 by 에일레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봄에 대한 느낌을 이것 저것 생각해봤다.
꽃이 피고, 날씨가 따뜻해지고, 뭐 사랑이 싹트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가깝게 떠오른 단어는 '축제'였다.
맞다, 봄은 축제의 계절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 봄이면 축제(우리 학교 축제 이름은 '대동제'였다) 준비 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과 학생회도 했었고, 과 내 토론 동아리도 했었고, 과내 소모임도 세개나 했던 열혈 학생이던 시절이었다.. ㅎ 축제 때 초청받아 오는 가수들 공연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다가 그보다 좀 더 오래 전- 나의 첫번째 축제에 대해 생각해 봤다. 고등학교 때 말이다.
고 1때 나는 처음으로 축제라는 것을 경험해봤다. 내가 속해있던 영화 동아리에서는 영화 상영회를 열었었다. 축제는 보통 2학년들이 주도하는 것이라서 나는 별로 한 것은 없었다. 내가 관심을 보인 것은 다른 쪽이었다.. 바로 장기자랑 무대.
희한한 일이었다. 나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전교생이 바라보는 무대에 올라갈 정도로 담이 큰 애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덥썩- 장기자랑 무대 신청을 해버렸다.
축제 전에 오디션을 봤다. 어차피 거기서 통과를 못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내가, 덥썩 통과를 해버렸다. 오디션을 봤던 선생님이 '너무 바닥만 보고 있지 마라'고 하셨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나는 몸치인데다가 무대 공포증 비스므리한게 있어서 무대에서의 액션 같은 것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축제 당일이 되었다.
장기자랑 무대에는 1학년, 2학년들 합해서 열 몇 팀이 올라갔던 것 같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대기하는 곳에서 2학년 선배들이 잔뜩 화려하게 꾸미고 화장하고 춤연습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1차적으로 기가 죽었던 것 같다. 난 딱히 준비한 것이 없었다. 옷도 그냥 교복이었고..
내 순서는 중간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쭈삣거리며 무대(그 운동장에 교장선생님이 훈화말씀 하는 곳.. 조회대라 그러나?)에 올라갔다. 간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사도 다 까먹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노래는 간주가 엄청 길었다. 노래방에 가도 간주점프가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간주 나오는 내내 그냥 고개만 까딱거리며 서 있었던 것 같다. 간주는 길고, 애는 움직임이 없고, 아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은 바닥에 두고 있으면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후회 막심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날 내가 부른 노래는 소찬휘의 '현명한 선택' 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친구가 추천해준 곡이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노래는 생각보다 잘 됐다. 나는 비교적 고음이 잘 올라가는 편이었고, 그 노래는 고음만 잘 되면 성공인 곡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1등을 했다. 수상 내역은 1, 2, 3등 그리고 인기상 4팀을 뽑는 거였는데 내가 1등, 그리고 2등은 2학년, 3등은 나와 같은 1학년 솔로로 나온 친구(이 친구는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반이 되었는데 노래를 진짜 잘하는 친구였다), 그리고 인기상은 엄정화의 '슬픈 기대' 무대를 똑같이 재현한 2학년 팀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던 1학년 중국어 선생님이 반드시 1학년 2팀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해서 저렇게 둘씩 뽑혔다고 한다.
축제 이후로 나는 간간이 '노래 잘 들었다, 노래 잘하더라' 같은 인사를 들으며 부끄러움에 빠져야 했다. 그리고 2학년들이 '1학년들은 옷도 못 입고 놀지도 못한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 때문인가 하는 죄책감(?)도 조금 들곤 했었다.
우리 학교는 2년마다 한번씩 축제를 하는 것으로 정해져버려서 나의 두번째 축제는 내가 고 3때 열렸고, 고 3들은 철저히 축제에서 배제시키려 했던 학교 덕분에 두번째 축제는 그냥 구경만 살짝 살짝 했던 기억이 난다.
서두가 길었네.. 어쨌든 고등학교 축제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풋풋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몇년 후, 나는 고등학교 축제를 한껏 풋풋하게 그려낸 영화 한 편을 보게 된다.
축제 준비로 바쁜 시바사키 고교. 멤버의 부상과 탈퇴 등으로 인해 밴드부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일단 있는 멤버만으로 공연을 하기로 하고, 가장 시급한 보컬을 영입하기로 결정한다. 새로 보컬로 합류하게 된 것은 교환학생인 한국인 송. 일본어가 서툰 송은 같이 밴드 하겠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얼결에 들어오게 된 것인데, 송의 노래를 들은 멤버들은 기대 이하의 실력에 당황한다. 어쨌거나 축제는 다가오고, 소녀들은 80년대 인기 밴드 블루 하트의 노래를 하기로 하고 연습에 매진한다.
배두나의 첫 일본 진출작이기도 했던 이 <린다 린다 린다>는 작품 중에서 주인공들이 연주하는 노래 제목을 가져왔다. 이 노래는 내가 취미밴드하던 시절에 한번 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다. 아마 내가 일본어만 할 줄 알았다면 했을지도..
이 영화는 일본이라는 배경을 떠나 어디든 비슷비슷할 수 밖에 없는 고등학교 생활과 여고생들의 예민한 감수성, 감정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좋다. 제각기 성격이 다른 여자아이들의 캐릭터도 좋고, 축제 무대를 위해 집에서 연습하고, 노래방에 가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이어폰으로 계속 노래를 듣고 하는 것도 좋고, 여자아이들끼리 모여서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는 모습도 좋고, 그 또래만이 가질 수 있는 누구를 좋아하고 하는 순수한 감정 표현도 좋다.
비오는 공연날 당일, 멤버들은 밤새 연습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늦어서 허둥지둥 달려오게 된다. 비에 젖어 온몸은 흠뻑 젖고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져서 옷도 엉망이 된다. 늦어버린 그들의 무대는 임시로 무대를 채우는 중인 다른 학생들이 충분히 주목받고 있는 상황. 멤버들은 맨발로 무대에 오르고, 학생들은 뭔가 모르게 웅성댄다. 긴장 속에서 그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보인다.
시궁쥐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 사진에는 찍히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만약 내가 언젠가 그대와 만나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때는 제발 사랑의 의미를 알아주세요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시궁쥐처럼 그 누구보다 상냥하게 시궁쥐처럼 그 무엇보다 따뜻하게
사랑이 아니라도 운명이 아니라도 그대와 헤어지지는 않을거야
결코 지지않는 강한 힘을 나는 하나만 가질거야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노래는 서툴고 박자가 조금 안맞아도 어떠랴. 아직 어리고, 이렇게 사랑스럽고, 이렇게 즐거운데.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이다.
+ 덧붙임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축제는 가을에 있네..
봄이랑 상관이 없는 거였..
++ 또 덧붙임.
사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따로 있다.. ㅎ
서툰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일본인 소년과
멤버들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가야 한다는 소녀,
둘다 너무너무 귀엽다 ㅠㅠ
(배두나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저 소년은 훗날 데스노트의 L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