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 / 음모] 분명 뭔가가 있다. by 에일레스
나는 나름 영화를 많이 보는 이미지(?)로 주변에 알려져있지만, 20살 이전까지는 비디오 가게만 단골로 다녔을 뿐 영화관에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 친구들이랑 조금씩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때도 자주 다닌 것은 아니었다. 혼자 영화 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도 몇년이 지난 이후였다. 처음으로 혼자 영화 본 것이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처음으로 혼자 '서울까지' 가서 본 영화가 뭐였는지는 기억난다.
그것은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 이었다.
어쩌다 이 영화를 보러 갈 결심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즈음에 보던 영화잡지에서 이 영화에 대한 좋은 평을 읽어서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겠지만. 이 영화는 인천에서는 상영을 안 했고, 지금은 사라진 종로 코아아트홀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혼자 종각역에 갔었다. (그리고 몇년 후, 나는 그 코아아트홀 자리에서 200m 정도 밖에 안되는 곳으로 6년간 출퇴근을 한다 ㅋㅋㅋㅋ)
<볼링 포 콜럼바인>은 1999년도에 미국 콜로라도주의 작은 도시 리틀턴에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콜럼바인 고교 학생이었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라는 두 학생은 어느 날 학교에 총을 가지고 들어와 식당과 도서관 등에서 총을 난사했고 그로 인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사망했다. 둘은 현장에서 자살했다.
흔히들 그러듯이, 이런 사건이 터지면 언론과 사람들은 그 원인을 아이들이 접하는 폭력적인 게임, 영화, 음악 등으로 돌린다. 그 중에서도 범인들이 록밴드 마릴린 맨슨의 팬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마릴린 맨슨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사건 발생 후 마릴린 맨슨은 해당 지역에서의 공연을 취소하지만 몇년 후 다시 공연하러 가게 되자 종교단체 등에서 집회를 가지는 등 반대를 한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는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아이들이 쉽게 총기에 접근할 수 있는 현실과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의 미국의 문화에서 찾는다. 콜럼바인 사건이 일어난 날은 미국이 코소보에 가장 많은 폭격을 퍼부은 날이었고, 미 총기협회(NRA)는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도 되지 않아 굳이 그 지역에서 집회를 갖고, '오지 말라'고 메일을 보낸 주지사를 비웃으며, '내 총을 빼앗을 순 없다'고 소리높여 외친다. (이렇게 하는 NRA의 회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찰턴 헤스턴이다..) 은행에서는 신규 계좌를 만들면 선물로 총기를 준다고 광고하고,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마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총알을 판다. (영화 후반부에 마이클 무어는 콜럼바인 사건으로 인해 장애를 얻게 된 학생들과 함께 K마트에서의 총알 판매를 중단시키는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돌아가기 때문일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악의 화신'처럼 일컬어지는 마릴린 맨슨과의 인터뷰 장면이다. 맨슨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괴한 외모를 하고 가장 정상적인 인터뷰를 한다. 여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사실 마이클 무어는 반대 세력도 꽤 많이 존재한다. 마이클 무어를 비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마이클 무어 뒤집어 보기>)까지 존재한다. 비난 내용은 이렇다. 영화속에서 했던 말과는 다르게 실제로 그는 부자 동네 출신이라던가, 그의 전작인 <로저와 나>에서 끝내 만나지 못한 것처럼 묘사된 로저 스미스 GM 회장을 실제로는 15분간 만났다던가, <볼링 포 콜럼바인>에 나온 은행에서 총기 받는 장면이 실제와 다르게 묘사되었다던가, 영화에 나온 인터뷰 등이 왜곡된 내용이라던가.. 합리적인 비판은 필요하지만 좀 말꼬리잡기 같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마이클 무어의 영화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딱딱하지 않은 방식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서 보여주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음모론을 제기한다. (그의 다음 작품인 <화씨 911>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앨 고어를 이기는 과정에서의 부정선거에 대해 말하는 동시에 빈 라덴 집안과 부시 사이의 오래된 커넥션에 대해 지적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서 원하는 것을 그는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알려준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관객이 그에게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의 영화들에 비추어 우리 사회를 진단해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청소년들에 유해하다는 이유로 게임 셧다운제 등등 이상한-_- 정책들을 자꾸 시행하려고 하는데.. 그거보다도 부디 TV에 나와 헛소리하는 정치인들 입단속이나 시켰으면 좋겠다. 그런 놈들 자꾸 뽑아주는 사람들 정신 개조도 좀 했으면 좋겠고.. 내가 가장 이해 안되는 것 중 하나가 진짜 힘들고 못사는 사람들이 서민들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인간들을 자꾸 뽑는건데.. 거기야 말로 뭔가 음모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아주 지독한 음모.
세상에는 분명 뭔가가 있다. 내가,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그걸 밝혀주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그나마 눈을 뜨고 귀를 열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