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01311 / 음악] 노래하지 마오, 아름다운 이여. by 김교주

hanaholic 2013. 11. 29. 21:27

http://youtu.be/mjXcwPk-wfw

 

아름다운 이여!

내 앞에서 슬픈 그루지아의 노래를 부르지 마오.

다른 인생, 먼 곳의 해변을 떠올린다오.

 

오, 애절한 가락은 내게

그 늪...밤....

그리고 달빛 아래 멀리 보이는

가련한 처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오.

 

그대를 보면 사랑에 겨워

운명적인 환상을 잊고 말지만

그대가 노래할 때

환상은 다시 내게 찾아든다오.

 

 

 

 

 

영화 샤인에서였던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이 기억은 확실치 않다. 검색을 거치지 않고 오직 내 기억력에만 의존해서 쓰는 문단이라 확언할 수가 없다는 점...) 어쩌구 하는 곡이 줄창 언급되면서 나는 라흐마니노프를 처음 알았다. 피아노를 배우기는 했지만 소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의 곡을 내가 직접 연주하기란 요원한 일이었고, 악보를 한 번 스윽 흝어보고 나서는 도저히 내가 칠 수 없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도전조차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가 샤인이었건 아니건 간에.

 

내셔널리즘에 찌들어 있던 러시아 음악이 다시 차이코프스키 스타일로 되돌려 놓은 사람이 라흐마니노프라면, 푸시킨은 러시아 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달관한 인생 선배의 모습 보여주시던 이 분의 시와 라흐마니노프가 만난 음악이 바로 노래하지 마오, 아름다운 이여 되시겠다.

시에 곡을 붙여 노래가 탄생하는 거야 매우 자주 있는 일이고, 게다가 러시아 시인 가운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좋을 푸시킨이니 그의 시에 곡이 붙었다는 것 또한 그다지 놀라운 점은 아니지만 라흐마니노프가 가사 있는 곡을 썼다는 게 오히려 특이하달까. 이 곡은 소프라노버전과 베이스 버전이 둘 다 있다. 개인적으로는 링크 걸어둔 소프라노 버전을 추천한다.

 

 

시는 멜로디 없는 음악이고 음악은 말없는 시라는 경구가 있다. 시와 노래는 그 뿌리를 같이 한다는 의미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러시아는 참 특이한 국가다. 그 넓은 땅덩어리의 대부분이 저주받은 동토,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울하고 어두운 문학 작품들,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그 정서)! 하지만 그 와중에 미친듯이 아름다운 수많은 음악들이 러시아 작곡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리고, 분명히 그 러시아 작곡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위의 곡 이외에도 푸시킨의 집시들 에서 영감을 받아 오페라를 작곡했다고도 한다. 고전으로의 회귀를 꿈꿨던 그에게 푸시킨이라는 선택은 절묘하면서도 타당해 보인다.

가을을 마무리하고 겨울을 맞기에, 참 괜찮은 곡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