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01308 / 우울증] Live and die on this day by 에일레스

에일레스. 2013. 9. 1. 23:29

한때 내가 우울증이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밤마다 혼자 한시간씩 울다 자던 시절이었다. 정신과에 한번 상담을 받아볼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실제로 주변에 있는 정신과 위치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결국 병원에 가보진 않았다. 사실은 혹시 그게 어떤 식으로든 기록에 남을까봐 걱정되기도 했고. (※ 얼마 전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정신과 상담 기록같은거 절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걱정말고 상담 받으려는 사람들은 가시길..) 결정적으로, 우울증 증세 같은걸 검색해보면 나랑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일단 난 우울증이라기엔 너무 잘 먹고-_- 너무 이성적이더라구. -_-;

 

영화를 보다 보면, '우울증'이라고 했을 때 생각나는 몇가지 증세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있다. 예전에 썼던 글에서 소개했던 <맨 온 파이어>의 크리시(덴젤 워싱턴)도 그런 캐릭터 중 하나였고, 오늘 말하려고 하는 영화, <더 그레이>의 주인공 오트웨이(리암 니슨) 역시 그런 캐릭터다.

 

 

 


더 그레이 (2012)

The Grey 
7.7
감독
조 카나한
출연
리암 니슨, 프랭크 그릴로, 더모트 멀로니, 달라스 로버츠, 조 앤더슨
정보
액션, 드라마 | 미국 | 116 분 |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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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웨이는 알래스카에서 석유 추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가드 역할을 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작업 현장은 그의 표현에 의하면 '전과자들, 도망자들, 떠돌이들, 멍청이들' 처럼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없는 자들'이 모인 곳이다.

 

 

 

 

 

 

 

 

오트웨이는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그는 무기력하고, 밤마다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꿈을 계속해서 꾼다. 아내와 함께 누워 살아있음을 느끼는 따뜻한 순간들을. 그와 대비되어 춥디 추운 알래스카는 그에게 차가운 고통만을 주는 곳일 뿐이다.

 

오트웨이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지난 후, 이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된다. 알래스카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비행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어딘지도 모르는 설원으로 떨어진 비행기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작 일곱명 뿐. 오트웨이는 아무도 자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사람들을 독려해 길을 찾아 가기로 한다. 영하 20도도 되지 않는 엄청난 추위와 식량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늑대떼로부터 그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늑대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과 다름 없다. 늑대들은 오트웨이와는 달리 삶에 대한 강한 욕구를 상징하는 존재다. 늑대들은 사람도, 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살 길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하는 오트웨이 일행을 늑대들은 끊임없이 쫓으며 사냥한다.

오트웨이는 처음 조난당했을 때에는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법을 강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존전문가라는 느낌인데,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통솔하여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선다. 애초에 그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오트웨이의 삶에 대한 의지가 점점 강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늑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욱 그러하다.

 

영화 속에서 오트웨이가 계속 읊조리는 시가 있다.

 

[ 다시 한 번 싸움 속으로..

  내가 맞이할 최후, 최고의 전투를 향해.

  바로 이 날을 살고 또 죽을 것이다.

  바로 이 날을 살고 또 죽을 것이다. 

  Once more into the fray...

  Into the last good fight I'll never know.

  Live and die on this day...

  Live and die on this day... ]

 

영화 초반에 이 시가 나올 때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이 시가 나올 때의 느낌은 아주 다르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고단한 인생에 대한 회고와 같은 느낌이었다면, 마지막은 생존을 위한 전투를 맞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사람에 따라서 이 영화의 결말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사실상 이 영화의 결말은 자명하다. 그 때문에 오히려 우울하게 여겨질 구석도 분명 있다.

그렇지만 내가 느꼈던 이 영화의 힘은 강한 '의지'에 대한 것이었다. 극한 상황에 닥쳤을 때의, 본능보다 강한 삶에 대한 의지.

 

그렇다.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의지'인 것이다.